[사설]남북대화, 현대가 '당국' 인가

  • 입력 2001년 10월 3일 18시 45분


북한 아태평화위 송호경 부위원장과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사장이 지난달 금강산에서 가졌다는 대화록을 보면 남북 대화에 나서는 북측의 자세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송 부위원장은 지난달 제5차장관급회담이 현대를 위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배려로 열렸다며 현대측에 금강산관광대금을 처음 약속대로 지불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우선 두 사람이 나눈 얘기를 보면 북측은 남한당국을 아예 대화의 상대로조차 인정하지 않는 자세다. 송 부위원장은 북측의 5차장관급 회담 제의가 “현대를 위해서라도 당국 회담을 주동적으로 열라”는 김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우리는 금강산 활성화문제도 현대 의견을 존중하여 풀어 나가며 개성공업지구 문제도 현대를 기본창구로 추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만을 상대하겠다는 북측의 이 같은 태도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한 당국이 민족적인 화해와 협력의 길을 열어 가자고 한 그들의 주장과 정면 배치된다. 북측이 아무리 당국간 대화에 응한다 해도 이처럼 내심으로 남한 당국을 배제하고 있다면 생산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남한당국은 그야말로 ‘들러리’ 역할만 하고 그러다 보니 항상 북측의 주장과 요구에 끌려다니는 상황이 된다.

북측이 현대만을 상대하려는 의도도 민간차원의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현대가 99년 북측과 합의한 금강산 관광대가를 한푼도 줄이지 않고 챙기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다. 송 부위원장은 지난 7월 예상됐던 남북한 당국간회담이 열리지 못한 이유가 현대측이 관광대금을 약속대로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여러 차례 ‘돈’문제를 거론했다. 앞으로도 남북한간의 모든 접촉과 대화는 현대측의 관광대금 지불 여부가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뜻이다.

남북한 당국간의 대화가 오로지 김 국방위원장의 특별배려 때문에 가능하다는 송 부위원장의 발언도 우리에게는 상당히 거북하고 불쾌하게 들린다. 아무리 북측 체제의 특성을 감안한다 해도 남북대화를 마치 김 국방위원장의 시혜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대화의 상대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어제부터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남북당국간회담이 열리는 등 앞으로 남북한간의 접촉과 교류가 상당히 활기를 띨 전망이다. 그러나 상대를 상대로 인정해 주지 않고 다른 실속만 챙기려는 대화는 해보았자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할 뿐이다. 남북대화에 대한 북측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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