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공조우선…청와대 매사 독주"

  • 입력 2001년 8월 20일 23시 37분


20일 오후 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이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으로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를 은밀하게 찾았다. 비밀 얘기가 있는 듯 한 실장은 타고 온 차를 김 명예총재의 자택에 들여놓는 등 보안에 신경을 썼다. 자민련 소속인 오장섭(吳長燮) 건설교통부장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당과 자민련 두 공동 여당이 갈등을 겪고 있는 와중이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간에는 최근 시국과 국정 현안에 대한 해법,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 명예총재의 회동 날짜 등에 관한 논의가 오갔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명예총재는 작심한 듯 ‘할 말’을 했다고 한다.

김 명예총재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항공안전 2등급 판정과 관련해 청와대와 민주당 일각에서 오 장관 문책론이 제기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나는 신문에서야 보고 알았다. 왜 이런 얘기가 나오느냐”고 강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명예총재는 또 청와대와 민주당이 말로는 ‘공조 우선’을 다짐하지만 매사에 독주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한 실장을 몰아세우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명예총재는 김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여야 영수회담을 제의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단독으로 얘기하고 자민련은 따라오라는 식으로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었다.

김 명예총재는 최근 언론사주 구속 문제와 관련해서도 ‘불구속 처리’를 건의했다가 김 대통령이 ‘원칙 처리’를 강조하는 바람에 머쓱해진 적도 있다는 전언이다.

이와 함께 김 명예총재는 평양 대축전에 참가한 남측 대표단의 돌출 행동과 이 같은 사태를 야기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자민련은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명예총재의 이 같은 시국 인식과 불만은 결국 금명간 있게 될 김 대통령과 김 명예총재의 회동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DJP 회동에서 이른바 ‘JP 대망론’과 관련한 논의가 있을지 여부다. 김 명예총재는 요즘 부쩍 차기 대선 출마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명예총재의 한 측근은 최근 사석에서 “97년 대선 때는 JP가 DJ를 밀었으니 내년 대선에서는 DJ가 JP를 밀어 줄 때”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회동에서 내년 대선 구도에 대한 속 깊은 얘기가 오갈 가능성도 많다는 관측들이다.

<윤승모·박성원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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