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개각' 우려]"안배차원 장관에 뭘 기대하겠나"

  • 입력 2001년 3월 28일 18시 44분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입각한 3·26 개각에 대한 공무원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정치적 의도에 의한 행정 왜곡, 앞뒤를 고려하지 않는 개혁지상주의 등을 우려하는 관료들의 목소리가 많다.》

▼행정 왜곡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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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공무원 보신주의 개혁 걸림돌"

총리실의 한 간부는 “대통령 임기말에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라는 대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국정운영을 정치인 각료들에게 맡기는 것에 대한 공무원들의 불안감이 적지 않다. 근원적으로 선거에 초연한 행정이 가능하겠느냐”며 표를 의식한 인기위주 정책을 우려했다.

또 보건복지부의 한 간부는 “여론과 인기를 많이 의식하는 정치인 장관의 특성상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대책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의 한 간부도 “민심에 민감한 정치인 장관은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을 소신있게 밀어붙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민련 출신 장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더 높다.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안배 차원에서 온 장관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느냐”고 말했다. 산업자원부에선 “가뜩이나 산자부 업무가 축소돼 왔는데 자민련 출신 장관이 연거푸 오니 더 위축된다”며 “부처의 존폐마저 걱정스럽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개혁지상주의 불안▼

정치인 장관들이 개혁지상주의에 물들어 현실감을 결여한 채 독선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국무조정실의 한 관계자는 “당정에 성격이 너무나 강한 인사들이 포진한 감이 없지 않다”며 “이들이 독단적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정치인 장관이 밖에서 잘못된 정보를 듣고 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업무 추진이 힘든 경우가 많았다”고 말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김원길(金元吉)보건복지부장관과 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이 과거에 의료개혁을 어떻게 밀어붙였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며 “‘재판(再版)’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불협화음 우려▼

정치인 장관의 개성으로 인한 내각 내 혼선과 공무원사회와의 불협화음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해양수산부의 한 간부는 “정우택(鄭宇澤)장관의 행정고시 동기생 대부분이 경제부처 국과장급인데 행시 기수를 연공서열의 척도로 삼는 공직사회에서 직업관료들의 거부감 등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소신이 강하고 직선적인 성격의 장재식(張在植)산업자원부장관이 과거 진념(陳稔)경제부총리를 자주 비판해왔던 점이나 이태복(李泰馥)대통령복지노동수석이 의약분업 유보를 주장해온 점 등을 들어 불협화음을 예견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인 장관에 대한 주문▼

김신복(金信福)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정치인 장관들은 본 임무가 장관이란 사실을 잊지 말고 장기적 안목에서 현안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또 “표를 의식해 효과가 금방 나오는 인기위주 정책이 아니라 중립적이고 안정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행정자치부의 한 간부는 “정치인 장관들이 경력관리 차원에서 왔다는 생각을 버려야 공무원들이 소극적으로 업무를 대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관리들은 “장관이 공무원에 대한 불신을 갖고 일해서는 실패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나 국회와의 관계에서 능력을 발휘해 공무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외풍을 막아달라는 것도 정치인 장관들에 대한 관리들의 빠지지 않는 주문 중 하나다.

<양기대·문철·정용관·부형권기자>kee@donga.com

공무원들이 꼽은 정치인 장관에 대한 10계명
1. 본 임무가 의원이 아닌 장관임을 잊지 말라.6. 정치권의 협조를 최대한 이끌어 내라
2. 단기적인 인기정책만 추진하지 말라7. 외풍을 막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라
3. 정치권 등 외부의 정보에 의존하지 말라8. 부하 관료들과의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하라
4. 공무원에 대한 불신감을 버려라9. 전문가들의 조언을 많이 들어라
5. 여론과 민심에 민감하되 휘둘리지 말라10. 부하 직원들의 사기진작책을 강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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