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시대]『지역주의 극복위한 절호의 기회』

  • 입력 1997년 12월 22일 20시 22분


근 40년 동안 지역주의는 건드릴수록 부어오르는 우리 사회의 은밀한 환부(患部)였다. 어설프게 손쓰면 뒤탈이 날지 몰라 의식적으로 외면하기도 했고 공개적으로 치유하자고 해도 자칫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며 가슴 속에 싸매두기도 했다. 이제 와서 누가 어떤 이유로 지역주의의 골을 패게 했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 사이에도 지역주의와 3김(金)정치, 지역주의 청산과 「3김정치」 청산이 어느새 동의어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3김의 정치적 공과(功過)와는 별개로 이들이 지역주의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수혜자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김시대의 질긴 생명력 또한 지역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의 제휴와 동맹, 반목과 대결이 지역주의를 부풀려왔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87년 대선에서의 야권후보단일화 실패와 90년의 3당합당, 92년 대선에서의 양김대결은 지역주의 심화의 주요고비였다. 아무튼 이들이 지역주의라는 끈적거리는 실로 엮어낸 3김정치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었다. 그러나 그 국민은 이번 대선을 통해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다시 한번 이들에게 맡겼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대선의 의미는 엄중하다. 지역주의 극복은 국민이 3김에게 부여한 마지막 소명이자 「김대중(金大中)정권」의 성패를 최종적으로 좌우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일단은 희망의 싹이 보인다. 3김의 정치적 역학관계 변화와 함께 자세 변화의 조짐이 과거와는 달라진 「신(新) 3김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20일 국정운영에 적극 협력키로 합의한 김당선자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청와대 회동은 3김의 동반자적인 관계 정립에 대한 다소 성급한 기대마저 갖게 했다. 무엇보다 국민의식의 변화 기미가 청신호라 할 수 있다. 이번 대선 역시 국토 서쪽은 김당선자가, 동쪽은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후보가 석권하는 「서김동이(西金東李)」의 지역분할구도가 극명하게 드러났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일기 시작한 변화의 실마리를 읽을 수 있다. 김당선자의 영남권 대선득표율 변화에서 그 함축된 의미가 드러난다. 김당선자는 이번에 부산 경남과 대구 경북에서 각각 15.3% 11.0% 12.5% 13.7% 등 모두 두자릿수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87년 대선 이후 세 차례 대선을 거치면서 김당선자의 득표율은 영남권 전 지역에서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다. 87년 대선 때 김당선자는 부산 경남과 대구 경북에서 각각 9.1% 4.5% 2.6% 2.4% 등 한자릿수의 득표율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92년 대선 때는 그보다 조금씩 올라 각각 12.5% 9.2% 7.8% 9.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역색이 상대적으로 옅은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지역에서 김당선자의 득표율 상승은 「비영남 비호남」 유권자들의 「탈(脫)지역주의」 경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남권의 변화는 아직 미미한 편이고 호남은 대선을 거칠수록 김당선자의 득표율이 상승하는 역현상을 보여 지역주의 완화 추세를 일반론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 3김시대는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고 「지역주의의 순교자」 또는 「지역주의의 화신(化身)」이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엇갈려온 김당선자에게 전적인 갈무리 책임이 지워졌다. 「김대중시대」의 개막으로 지역주의라는 환부가 고스란히 수술대 위에 올려진 셈이다. 자연 김당선자와 자신들의 한을 김당선자에게 투영시켜 온 호남사람들이 지역주의 극복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승자의 입으로 선거는 승부이기 보다 국민통합과 갈등해소의 축제임을 선언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지역주의 극복의 첫번째 화두(話頭)는 「동서화합」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당선자와 김대통령이 대선 직후 취한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사면 복권은 시의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역대 대통령이 모두 화합을 강조했으나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혜(施惠)적인 화합」이나 「말만 앞세운 제스처」가소외된사람들을 더욱 냉소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당선자는 불행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진정한 화합 노력을 국민이 실감토록 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김당선자가 야당시절 줄기차게 외쳤듯 각종 공직 인사에서 지역편중을 시정하는 일이다. 지역주의의 골을 깊게 했을 뿐 아니라 부패와 정경유착의 온상이 됐던 게 바로 「끼리끼리정권」이었다. 이번에도 「TK정권」이나 「PK정권」에 대응하는 「호남정권」이라는 말이 또다시 나와서는 김당선자 역시 5년 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퇴장할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하마평이 무성한 새 정권의 조각이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권의 변화다. 1인지배 지역정당이라는 3김시대의 유물이 그대로 있는 한 지역주의의 극복은 요원하다. 이를 극복하려면 기존정당의 경계를 허물 수도 있다. 집권경험이 없는 국민회의로서는 인적 수혈도 절실할 것이다. 이는 원내 안정의석 확보를 위한 필요성 때문만은 아니다. 현 정권 5년간의 국정표류가 새로운 주도세력을 창출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임을 김당선자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헌정사 50년만의 정권교체는 자연스럽게 정치권의 새판짜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구여권인사들의 「정치적 공황」은 정치적 유동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계개편 과정에서도 김당선자는 금도(襟度)를 지켜야 한다. 정치적으로 궁박한 상태를 이용한 의원 빼내기 등 구태를 답습해서는 안된다. 의석수를 늘릴 목적으로 이쪽저쪽 의원들을 마구 영입해 놓고 의붓자식 취급해서도 안될 일이다. 김당선자는 「실패한 집권자」인 김대통령의 실패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겸허한 자세로 김대통령에게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3김이 국정운영을 위해 협의하는 모습만으로도 지역주의의 골은 상당히 메워질 것이란 견해도 있다. 지역주의의 음성화는 계층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도 됐다. 이번 대선에서 서울의 47개 개표구 중 이회창후보가 득표율 1위를 차지한 9곳은 대부분 중산층 밀집지역이었다. 지역주의 극복은 계층간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도 긴요하고 시급한 김당선자의 숙명적인 책무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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