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후보 지지 「중앙일보 문건」, 선거판 새 불씨

  • 입력 1997년 11월 29일 20시 12분


중앙일보 편집국 간부 및 기자들이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후보를 장기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도왔다는 정치권 일각의 「폭로사건」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는지는 아직 예단하기 힘들다. 관련 문건을 입수, 공개한 국민신당 등 타 후보 진영의 주장과 중앙일보측 주장이 일단은 엇갈리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국민신당이 29일 관련 증거로 공개한 「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내부문건은 신한국당 경선 직후인 7월24일 정치부기자가 이후보의 선거기본전략과 스타일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으로 돼있다. 국민신당 김충근(金忠根)대변인은 『이 문건이 신원미상의 제보자에 의해 11월24일자 서울 광화문 우체국소인이 찍힌 중앙일보 편지봉투에 넣어져 당사로 우송됐으며 이 문건의 작성경위와 의미를 밝히는 한장짜리 설명서도 첨부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 설명서에 따르면 이 문건은 중앙일보 편집국장의 지시에 따라 일선 정치부기자가 작성하고 정치부데스크가 가필한 것으로 편집국장이 이 보고서를 토대로 이후보를 만나 선거전략에 대해 조언했고 다른 편집국간부에 의해 중앙일보 편집국장출신의 이후보 특보에게도 전달됐다는 것. 이 문건에 대해 중앙일보측에서는 내부문서임에는 틀림없으나 이후보에게 조언하기 위해 작성한 게 아니라 이후보 진영이 자체분석한 것을 데스크들이 알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해 정보보고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결국 쟁점은 이 보고서가 「사내 정보보고용」인지, 아니면 「이후보 돕기용」인지 여부다. 문제의 보고서는 『이후보의 「법대로」 이미지는 절대권력과 부닥칠 때 좋은 인상을 주지만 대통령으로서는 딱딱하고 낡은 인상을 주며 이후보가 사석에서 과격한 용어를 사용해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민주당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등 국민적 이미지가 좋은 인사를 영입하고 이후보의 헤어스타일 등을 부드럽게 보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개선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신당은 이에 대해 『중앙일보가 사주의 방침에 따라 주도면밀하게 「이회창편들기, 이인제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현 경제사정 때문에 일부 공개하지 않은 제보내용도 있다』며 공세를 취하지만 중앙일보측은 『사실왜곡으로 명예훼손을 입은 이상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맞서는 형국이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한나라당측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국민회의측은 『사회부조리를 감시해야 할 언론사 편집국장이 어떻게 자신의 출세욕을 위해 부하들을 집단적으로 특정후보를 지원하게 할 수 있느냐』는 등 강력한 공식논평을 발표하고 대선이슈로 삼을 태세다. 대선후보 진영들과 언론사간에 선거운동기간 중 싸움이 벌어지는 예는 과거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언론사 내부에서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문건」이 이슈화됐다는 점에서 다소 특이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희귀한」 사태가 어떻게 전개돼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원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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