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國監]엄청난 자료요구…돈-인력 낭비

  • 입력 1997년 9월 29일 20시 43분


《매년 연례행사처럼 치러지고 있는 국정감사. 과거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국정비리를 캐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했으나 「한보사건」으로 「국감비리」가 낱낱이 드러남으로써 국감의 역기능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감이 안고 있는 폐해와 그에 대한 대책을 짚어본다.》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와 과천 정부2청사는 2주일 전부터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요구한 방대한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측은 『올해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자료요구를 자제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일선 공무원들의 이야기다. 예를 들면 건설교통부의 경우 이번에 국감자료제출을 요구받은 건수는 무려 1천8백여건. 지난해보다 2백여건이나 늘어난 숫자다. 건설교통부가 요구받은 국감자료는 양으로 따지면 양면인쇄로도 4천페이지에 이르는 분량. 1천페이지짜리 책 4권이다. 이를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의원 30명에게 4권 1질씩 주고 상임위 자체에 60질을 제출하려면 모두 90질의 책이 필요하다. 결국 1천페이지 두께의 책 3백60권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는 트럭 1대 분량이며 제작비만도 3천만원 정도가 든다. 국감자료와 관련, 문제는 대개 의원들이 필요없는 자료까지 마구잡이로 요구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공보위원회 소속인 A의원과 B의원은 각각 1천여건씩의 자료를 요구해 공무원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두 의원이 요구한 자료는 사과상자 1천개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 의원들의 자료요구가 이렇게 많다보니 공무원들은 보통 자료준비에만 2,3주일을 꼬박 매달려야 한다. 이 기간중 일상적인 업무는 완전히 손을 놓을 수밖에 없어 행정력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의원들이 요구하는 국감자료도 엉뚱하고 황당한 내용의 것이 태반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요구하는 자료인지 모를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예를 들면 「전국체육시설 현황을 시설 종류 종목 지역별로 세분해 제출하되 면적 및 숫자 성격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직원 전원의 봉급명세서와 발송공문 일체」 「전직원의 인사기록카드」 「…와 관련된 서류일체」 등등은 매년 되풀이되는 단골메뉴. 문제는 이렇게 엄청난 양의 자료를 요구해놓고 실제 국감에서는 요구한 자료를 토대로 한 질의는 거의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 중에는 특정 재벌이나 기업체 금융기관을 겨냥한 자료요청이 적지 않아 실제 국감을 위한 자료요구인지, 「딴 목적을 위한」 자료요구인지 의아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부처마다 국감자료준비에 드는 경비가 전무하다는 데 있다. 국감자료를 만드는데 드는 예산이 전혀 없는 만큼 매년 최소한 수천만원씩 드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장차관의 판공비를 전용하거나 관련업체에 손을 내밀어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부정이 싹틀 가능성이 크다. 국감기간중 각 부처가 의원들의 식사대접 등 접대를 책임지게 하는 것도 국감폐해 중의 하나. 국회의원들은 피감기관으로부터 식사 등 온갖 대접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대접이 소홀할 경우 국감장 안팎에서 금방 「눈치」를 보이기 때문에 접대를 소홀히 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이다. 모 경제부처의 경우 국감일에 해당 상임위 소속의원 30명과 보좌관 30명, 운전기사 30명, 속기사 및 행정실 요원 30명 등 2백명 가까운 인원의 식사를 매번 해결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경비도 「예산에 없는 경비」여서 부작용이 적지 않다. 국감의원들을 청사 구내식당에서 대접한다 해도 식사비를 1인당 1만원씩 잡으면 이들이 이틀간 네끼를 먹으니 8백만원이 들어간다. 이뿐이 아니다. 국감 마지막날은 의원들을 술집으로 모시는 게 관례이기 때문에 이 때 술값으로 수천만원이 날아가는게 보통이다. 이 정도의 식사와 술대접은 그래도 겉으로 드러난 것. 문제는 해당부처나 기관이 의원들을 「순화」시키기 위한 로비인데 여기에 기관장의 판공비가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산하단체에까지 손을 벌려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바로 「부패고리」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의원들의 지방현지국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게 공무원들의 지적이다. 「현장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국정에 대한 체감지수를 확인한다」는 명분이나 대개 약 20분간 현장조사 흉내만 낸 뒤 근처 명승지를 「유람」하고 「접대」받고 올라온다는 것이다. 95년 국회문공위가 독립기념관의 부실시공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시찰에 할애한 시간은 고작 10분. 여야의원들은 서로 방송카메라 앞에서 앞다투어 언론보도를 의식한 사진찍기에만 신경전을 벌이다가 오후에는 청주의 고인쇄박물관 등 주변으로 유람을 다녔다. 심지어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의원들이 접대받기 위해 국회의사당과 같은 좋은 회의실을 멀쩡하게 비워놓고 지방으로 감사를 나간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고 있다. 이같이 지방시찰이 문제가 되자 재정경제원은 국회재경위 소속 의원들과 협의, 올해부터 지방국세청과 지방관세청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감으로 국가기밀이 유출되는 것도 큰 문제다. 지난해 9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감 첫날 일부언론은 「신속 전략사령부 창설, 야전군사령부 해체」를 제목으로 한 군 관련기사를 1면에 크게 보도해 문제가 됐었다. 이 내용은 군사 2급비밀로 국방부에서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비공개를 전제로 보고한 것이었는데 당시 국감현장에 있던 한 야당의원 보좌관이 가까운 기자에게 흘려 기밀이 유출돼 관련자들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등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 경제학자는 지난 한 해 동안 국감에 들어간 공적인 비용이 국회의원들의 출장비 자료수집비 및 동원된 공무원 월급 등을 합해 모두 6백27억원이나 됐다고 산술적으로 계산해낸 적이 있다. 각 부처에서 음성적으로 사용하는 국감자료준비경비와 접대비 등까지 합하면 엄청난 비용이 「국감」이란 연례행사로 없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고비용 저효율」 「국력낭비」 「외화내빈」의 대표적 사례로 국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정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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