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 회견]『북한은 戰時형 국가관리체제』

  • 입력 1997년 7월 10일 11시 55분


북한 金正日(김정일)은 지난 92년 남침시나리오를 작성했으며 이를 본 군지휘관들이 당장 실천에 옮기자고 했으나 金日成이 인민생활부터 해결한 다음에 해야 한다면서 유보한 것으로 10일 밝혀졌다. 지난 4월 서울에 도착한 黃長燁(황장엽) 전북한노동당비서는 관계당국의 조사과정 진술과 이날 안기부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북한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생산은 1백% 자체해결하고 있고 북한 전지역이 요새화돼 있다』고 말했다. 黃씨는 『한반도에서 어느때 전쟁을 하든지 결국 전쟁은 벌어질 것』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전면전이 될 것이며 시기는 남한정세가 복잡하고 혼란하고 (남한의) 동맹국이 다른 곳에 역량을 분산시킬 때 북한이 전쟁을 도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金正日은 군대가 많고 수십년간 전쟁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 자기代에서 무조건 무력통일시키겠다며 「통일조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욕을 갖고 있다고 黃씨는 말했다. 黃씨는 또 북한은 전쟁을 6개월이상 끌지 않는다는 전략하에 전쟁물자를 6개월분만 비축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북한은 특히 특수부대원들에게 한국군 군복을 입혀 한국군이 북측지역에 침투한 것으로 위장한 후 한국군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 서울에 5∼6분동안 포를 쏘아 잿가루로 만든 다음 미군이 증원되기 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는 계획을 수립하고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 미국이 개입하려 할 경우에는 東京 등 몇개 일본 도시를 미사일로 타격해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개입을 저지시킬 계획이라고 黃씨는 말했다. 黃씨는 북한이 金日成(김일성) 사망이후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金正日이 총참모부 작전국장에게 바로 지시를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金正日의 독단적 명령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黃씨는 「북한의 전쟁시나리오는 전격전 전략에 입각, 십수만명의 특수부대원을 사전에 투입시켜 미사일기지 비행장 등 주요시설을 타격하는데 이어 기동전을 통해 남한전역을 장악한다는 것'이라면서 특히 金日成 사후 북한은 미사일 방사포 등 화력을 통해 단기간내 서울을 비롯한 전략지대를 타격 파괴시킨 후 협상을 추진한다는 전법을 세워두고 있다고 진술했다. 黃씨는 또 북한은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생물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핵무기와 관련시설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특별사찰이 제기됐을 때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했다는 점에서 모든 당비서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진술한것으로 안기부는 밝혔다. 黃씨는 金正日의 통치행태 및 지도자 자질과 관련, 『본질적인 면에서 金부자는 다 개인독재로 다를 바가 없다』면서 『金正日은 무계획적이며 조급하고 독단적이며 자기의 정책이나 노선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면 가차없이 처벌한다』고 말했다. 黃씨는 또 북한의 권력구조재편문제에 대해 『김정일의 변덕스런 성격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고 전제한 뒤 경제일꾼들이 대폭 교체되고 지병과 고령으로 활동이 부진한 부총리들도 모두 바뀔 것이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도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절대적인 고려기준이 돼서 많이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의 현실과 관련, 黃씨는 『북한의 현 경제는 마비상태』라면서 『곡물생산량이 부족하자 작년 12월 중앙당은 3개월은 국가에서, 3개월은 수입양곡으로, 3개월은 직장자체해결, 나머지 3개월은 개인이 자체조달하도록 방침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黃씨는 그러나 『북한은 오랫동안 쇄국정책을 실시하면서 전제주의적 통치기반을 강화해 왔기 때문에 북한체제가 1∼2년내에 쉽게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밝혔다. 黃씨는 특히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무력남침 위험성을 알리고 평화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대한민국에 왔다』면서 『북측은 말로는 평화통일을 떠들지만 전쟁에 의해 남을 말살하려는 방법으로 철두철미한 무력통일을 추구하고 있으며 믿을 것은 무기와 군대뿐이라고 하면서 40여년동안 전쟁준비에만 열중해 왔다』고 망명동기를 밝혔다. 이에앞서 안기부는 黃씨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黃씨에 대한 위장망명설 및 사상전향 거부의혹과 관련, 『조사결과 위장망명으로 판단할 만한 사항이 드러나거나 확인된 사실이 없다』면서 『북한 공산독재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민주체제인 대한민국으로의 망명을 길을 선택했고 그동안 주체사상을 통해 김부자 체제보위에 앞장서 온 데 대해 깊은 자책감을 느끼고 있어 더 이상 사상전향여부를 논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또 「황장엽리스트」문제에 대해 『黃이 북한의 지하조직이 상당수 남한에 침투해 있으며 남한내부동향에 대한 보고서가 김정일에게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조사과정에서 이른바 리스트 같은 것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그러나 『黃씨는 오랜세월동안 북한 고위층의 지위에 있으면서 득문한 북한의 공작관련 사항과 평양 및 해외체류시 접촉했던 국내외 인물들에 대해 진술한바 있다』면서 『황씨의 진술내용과 관계당국에 존안된 각종 정보자료를 토대로 대공수사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추적하고 있으며 대공혐의가 밝혀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당연히 소정의 법적절차에 따라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黃씨는 일본 東京에서 열린 국제주체사상세미나에 참석한 후 귀국길에 지난 2월12일 金德弘(김덕홍) 북한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과 함께 駐中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으며 韓中간 외교협상을 통해 3월18일 필리핀의 바기오로 옮겨진 후 일시 체류해오다가 지난 4월20일 서울에 도착, 그동안 관계당국의 조사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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