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전문가 이덕주 KAIST 명예교수 “실수는 아름다움일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5일 20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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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예술작품 ‘생명의 파동’ 전시

“공기방울 군집(群集) 형상이 인쇄 용지에 나타났어요. 컴퓨터 프로그래밍 잘못에 따른 예기치 않은 결과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인생의 실수도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죠.”

드론 전문가인 이덕주 KAIST 항공우주공학과 명예교수가 30여년 전 에어포일(비행기 날개) 주변의 바람의 흐름을 관찰하는 연구의 기억을 되살려 ‘생명의 파동’이라는 예술작품을 창작했다.

KAIST MR(Microrobot Research) 동아리 권진, 정명우, 최진혁 씨와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시민큐레이터 전시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돼 1~16일에 서울혁신파크 내 SeMA 창고에서 열리는 ‘나의 첫 창작일지’전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교수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에임스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시작해 항공기 제트엔진, 헬리콥터 공력음향학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평가받는다. 201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 헬리콥터 학회 부회장에 선출됐고, 현재 도심항공모빌리티산업기술연구조합 이사를 맡고 있다.

‘생명의 파동’은 철제 책상 위에 대형 아크릴 수조를 얹은 형태다. 아크릴 수조 내에는 부드럽게 진동을 일으켜 물 표면에 파동을 만드는 장치가 설치됐다. 그 파동은 투명한 아크릴에 투사돼 전시실 바닥에서도 파동이 일어나는 듯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덕주 교수(왼쪽) 전시장을 찾은 제자와 함께 자신의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 작품은 그의 생애 첫 예술작품이다.
이덕주 교수(왼쪽) 전시장을 찾은 제자와 함께 자신의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 작품은 그의 생애 첫 예술작품이다.
이 작품은 1990년대 초반의 연구 과정이 모티브가 됐다. 에어포일 주변 바람의 흐름을 컴퓨터로 관찰한 뒤 분석을 위해 그 결과를 프린터로 인쇄했는데, 정작 있어야 할 바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난데없이 일정한 패턴의 공기방울 군집 형상이 나타났다.

“공기방울 형상은 비록 컴퓨터 프로그래밍 잘못에 따른 것이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그 감동의 기억을 구현하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 해군연구소, KAIST의 관련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가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이 교수는 “당시의 공기방울 형상이 각인됐던 것은 삶에서 빚어지는 실수도 나중에는 아름다운 인생 전체를 구성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깨달음 때문이었다“며 “KAIST가 실패연구소를 만든 취지도 그렇거니와 실수나 실패는 노벨상 뿐 아니라 성공적인 인생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번 ‘나의 창작일지’ 전에는 이 교수를 포함해 각기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미술작가의 꿈을 간직했던 시민 5명의 시각예술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생계를 위한 바쁜 삶에 매달려야 했던 청년사업가, 일찍 세상을 떠난 화가 시동생의 작품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교사, 나중에서야 아버지의 진짜 사랑을 확인한 뮤지션, 자신의 삶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순간들을 나누고 싶었던 심리상담 전문가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100일간 멘토 작가 및 기획자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생애 첫 예술작품을 완성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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