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경기 남양주시 운길산 산행에 나선 심장 이식인과 기증인 가족이 장기기증 캠페인 현수막을 펴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남양주=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삶의 희망을 선물해주고 가신 당신의 마음을 느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3일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기 남양주시 운길산 자락 수종사 일주문 앞.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으며 일부 참가자는 눈물을 훔쳤다.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인체에서 단 하나뿐인 심장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의 가족과 누군가의 심장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들이 만난 날이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주관으로 처음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심장이식인 모임인 ‘새로운 삶 따뜻한 심장’ 회원 6명과 가족, 기증인 가족 모임 ‘도너패밀리(Donor Family)’ 14명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오전 경의중앙선 운길산역 광장에서 만난 이들은 광장에서 장기기증 서약 캠페인을 벌인 뒤 한 시간여 동안 산길을 걸어 수종사까지 올랐다.
이식인 모임 회장 김현중 씨(44)는 심장이 커지고 기능은 저하되는 확장성 심근증 진단을 받았지만 2009년 8월 심장을 이식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함께 산행하면서 기증인 가족에게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가족이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아가는 것이 기증인에 대한 최고의 예우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는 것이다.
한국은 법으로 이식인과 기증인이 서로를 알지 못하는 장기이식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식인이 누구에게 장기를 받았는지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이식인과 기증인 측이 서로 교류도 못 했다. 하지만 그동안 기증인 행사를 꾸준히 주관해온 운동본부 측에서 이식인 모임이 따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이날 행사를 마련했다. 물론 서로 직접적인 기증·이식인 관계는 아니다.
확장성 심근증으로 ‘몇 시간 뒤를 장담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뒤 2013년 10월 심장을 이식받은 강헌 씨(50)는 “한 번의 모임으로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벗기는 힘들겠지만 내가 이 자리에 있게 해준 분들을 계속 만나며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산행을 마치고 진행된 편지 낭송 자리에서 이식인의 편지에 눈물을 훔치던 기증인 가족 중에선 장부순 씨(73·여)가 편지를 써왔다. 장 씨는 2011년 세상을 떠난 아들의 장기를 기증했다. 그는 “내가 한 일이 옳은 일인지, 아들을 너무 아프게 보낸 건 아닌지 번민하며 괴로워했지만 건강한 여러분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운동본부 측은 앞으로 심장뿐만 아니라 신장과 췌장, 간 등 장기 이식·기증인 가족이 만나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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