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승전 백두산함, 해군 월급 쪼개 마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대한해협해전 영웅 최영섭옹 회고록 펴내
부산항 상륙 시도 北함정 섬멸… 망각은 파멸 초래… 6·25 잊지말아야

“우리는 해군이다. 바다의 방패.”

전화벨 소리 대신 우렁찬 해군가(海軍歌)가 들려왔다. 최영섭 해군 예비역 대령(85·사진)은 10년이 넘게 해군가를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사용할 만큼 해군과 바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는 백두산함 갑판사관 겸 항해사, 포술사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6·25전쟁에서 첫 승전보를 전한 대한해협해전을 비롯해 인천상륙작전, 원산·함흥 동해진격작전 등 수많은 전투에서 눈부신 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충무무공훈장 3회, 화랑무공훈장 2회, 근무공로훈장 1회 등 6개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의 머릿속에 가장 깊게 남은 전투는 대한해협해전이다.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이 첫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최 예비역 대령은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한국에는 전투기는커녕 탱크도 없었지만 해군에는 미국으로부터 1950년 4월에 들여온 백두산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최극빈국 중 하나인 한국이 백두산함을 도입하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대포 달린 군함을 사오자는 일념 하나로 장교, 하사관들은 월급의 5∼10%를 기부했다. 부인들은 삯바느질을 하고 바자회를 열어 1만5000달러를 마련했다”고 회상했다.

그런 정성이 담긴 백두산함은 6·25전쟁 당일 부산항을 공격하려던 북한 함정을 섬멸해 북한 남침의 속도를 늦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함정에는 1000여 t의 무기와 600여 명의 무장 병력이 실려 있었다. 최 예비역 대령은 “만약 북한 함정이 아무런 제재 없이 부산에 상륙했다면 전쟁의 양상은 돌이킬 수 없었을 것”이라며 “대한해협해전의 승리는 부산이 한반도에서 유엔군의 최후 보루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달 29일 11주년을 맞는 제2차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후배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그는 “당시 지휘부는 ‘북한 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오더라도 쏘지 말라. 적이 먼저 쏜 다음에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며 “세상에 이런 작전 지시가 어디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최근 ‘6·25 바다의 전우들’이란 회고록을 펴냈다. 6·25전쟁 당시 바다에서 함께 싸웠던 전우들을 기리며 6·25가 잊혀진 전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쟁 자료와 증언들을 모았다. 최 예비역 대령은 “망각은 파멸을 초래한다는 말이 있다”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밑바탕에는 6·25 세대의 피와 땀, 희생과 목숨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대한해협해전#최영섭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