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몽 오브라크 씨(오른쪽)와 부인 뤼시 씨가 1997년 2월 20일 클로드 베리 감독의 영화 ‘뤼시 오브라크’가 독일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된 것에 맞춰 함께 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제2차 세계대전 레지스탕스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려온 프랑스의 레몽 오브라크 씨(97)가 10일 파리 군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유대계 공산주의자였던 오브라크 씨는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장 물랭 레지스탕스 총사령관을 도와 항독 지하 무장투쟁을 이끈 핵심 멤버였다. 2007년 96세로 사망한 부인 뤼시 오브라크 씨 역시 여성 레지스탕스를 대표했던 인물이다.
오브라크 씨는 1943년 리옹의 칼뤼르 교회에서 물랭과 함께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됐다. 그러나 리옹 감옥에서 다른 레지스탕스 대원과 함께 트럭으로 옮겨지던 중 동료 레지스탕스이자 연인인 뤼시가 포함된 특공대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레지스탕스 역사에 유명한 이야기로 남은 이 구출작전은 1997년 명장 클로드 베리에 의해 ‘뤼시 오브라크’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에서 뤼시는 오브라크를 구하기 위해 리옹의 도살자로 불린 게슈타포 지도자 클라우스 바르비에게 몸을 파는가 하면 동료를 배신했을 가능성까지 암시돼 개봉 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당시 레지스탕스 단체에서는 영화 속 문제의 대목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부인했다.
오브라크 씨는 탈출 후 뤼시와 함께 1944년 영국 런던으로 갔고 종전 후 결혼하고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오브라크 씨는 마르세유 항 재건 감독 책임을 맡았고 1964년부터 10년여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일했다.
그는 샤를 드골이 런던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항독 무장투쟁을 시작한 지 70주년이 된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함께 런던으로 가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의 죽음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레지스탕스 역사의 전설을 만든 위대한 영웅이 사망했다”고 말했고, 르몽드 등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1면 톱기사로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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