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눈… 한번의 시도로 정상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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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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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 실패했던 강기석 대원의 기록…

‘2010년 3월 12일 선발대가 출국해서 5월 23일 귀국할 때까지 73일간의 등반기간 중 매일같이 내리는 눈 때문에 눈사태의 위험이 크다고 판단해 철수를 결정했다.’

지난달 18일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사진)은 이미 지난해 초 안나푸르나 남벽에 도전했다 철수했다. 그들은 1년 뒤의 운명을 예감하지 못했던 것일까. 당시 원정기에는 이미 눈사태의 위험이 생생히 적혀 있었다.

한국산서회(山書會)의 이병태 고문(치과의사)은 실종 대원들의 합동 영결식을 하루 앞둔 2일 박영석 원정대가 지난해 안나푸르나 남벽에 나섰을 때의 기록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겼다. 강 대원은 산을 좋아하는 인사들의 모임인 산서회 총무로 활동했다. 지난해 말 산서회에 글을 남겼다.

기록에 따르면 박 대장은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4월 3일 한국으로 떠나 14일 다시 베이스캠프에 돌아왔다. 이때 박 대장은 술에 취해 울면서 “밖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지만 가족들에게는 (위험한 일을 한다며) 그렇지 못했다”면서 자책했다. 하지만 부친상을 치르자마자 다시 산으로 돌아오는 집념을 발휘했다.

부상도 잇따랐다. 강 대원은 떨어지는 돌에 맞아 오른 무릎이 10cm가량 찢어져 인대가 파열됐다. 그러나 원정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렸다. 이들은 기존 루트의 이점을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 위험성에 대해 강 대원은 이렇게 적었다.

‘한번 올라가면 후퇴할 고정 로프가 없고, 확보물 부족으로 내려가는 상황이 더 어려워진다. 한정된 장비와 식량을 대원들이 배낭에 지고, 미리 설치된 고정 로프와 캠프도 없이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해야 한다.’

신동민-강기석 대원에 체육훈장 추서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일 서울대병원 박영석 원정대 합동분향소를 찾아 신동민 대원(왼쪽)에게 체육훈장 백마장, 강기석 대원(오른쪽)에게 거상장을 추서하고 있다. 박 대장은 2002년 생전에 이미 청룡장을 받았다. 합동영결식은 3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사진공동취재단
신동민-강기석 대원에 체육훈장 추서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일 서울대병원 박영석 원정대 합동분향소를 찾아 신동민 대원(왼쪽)에게 체육훈장 백마장, 강기석 대원(오른쪽)에게 거상장을 추서하고 있다. 박 대장은 2002년 생전에 이미 청룡장을 받았다. 합동영결식은 3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강 대원은 ‘끝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눈사태 위험이 커져 원정대는 철수를 결정했다. 박영석 대장과 대원들은 2011년 가을 시즌에 다시 도전할 것을 약속했다’고 글을 맺었다. 그들은 약속대로 올해 가을 다시 이곳을 찾았지만 눈사태로 실종됐다.

한편 이 고문은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과 박 대장이 한때 남북한 합동 에베레스트 등반을 구상했던 일화를 밝혔다. 이 회장과 박 대장은 이를 위한 남북한 산악인 교류를 위해 2006년 1월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이 회장과 박 대장은 북한의 치과병원이 낡은 것을 보고 건물을 수리해주기도 했다고 이 고문은 회고했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일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을 찾아 실종자들에게 체육훈장을 추서했다.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 박선규 문화부 차관, 산악인 엄흥길 오은선 씨, 박 대장의 원정활동을 후원해온 동아일보사 김재호 사장, 배인준 주필 등도 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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