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라, 北에서 넘어온 수양딸

  • Array
  • 입력 2010년 7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 양천경찰서 윤재인 경위
2006년 입국 탈북자와 인연
2008년 가족회의서 새식구로
대 학에도 진학 간호사 꿈키워

“생큐 아빠, 비가 넘 많이 와용. 아빠 오늘 운전 조심하세용.”

2008년 여름 윤재인 경위 가족과 안수정 씨(왼쪽)가 인천 용유도에 가족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 사진 제공 윤재인 경위
2008년 여름 윤재인 경위 가족과 안수정 씨(왼쪽)가 인천 용유도에 가족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 사진 제공 윤재인 경위
지난달 30일 딸의 생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근무하는 아빠가 마음에 걸렸는지 ‘발신인: 딸 수정이’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아빠는 일 때문에 저녁을 함께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 딸, 이렇게 예쁘게 문자를 보내요.” 그는 저장된 문자를 내보이며 입이 귀에 걸리게 웃었다. 여느 부녀와 다름없어 보이는 이들은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묶여 있다.

이미 장성한 1남 1녀를 둔 서울 양천경찰서 경무과 윤재인 경위(54)에게 안수정 씨(가명·27)라는 딸이 생긴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안 씨는 2006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제3국을 거쳐 혈혈단신 입국한 탈북자였고 윤 씨는 양천경찰서 정보보안과 경찰이었다. 2007년 7월 선임 관리인으로부터 안 씨의 신변보호를 넘겨받은 윤 경위는 몇 달 뒤 그의 ‘평생보호’를 맡기로 약속했다.

23년간 보안업무에만 전념해온 윤 경위에게 안 씨는 첫 만남부터 특별한 느낌을 줬다. “집 안을 깔끔하게 정돈해 놓고 있었고 아이의 표정이 생각 이상으로 밝았다”고 윤 경위는 회상했다. 2007년 탈북자 교육소인 하나원과 선임 관리인에게서 넘겨받은 안 씨의 기록도 성실함과 긍정적 사고로 가득했다. 윤 경위는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은 뒤 특례입학으로 간호대학에 진학해 남한에서 간호사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을 구체적으로 적어놨더라”며 “처음 만난 날 ‘아르바이트 틈틈이 시간을 내 이미 간호대학 수시모집에 지원을 해놓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기특한 마음에 안 씨에게 연락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서점 판매원, 옷가게 점원을 하면서도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틈틈이 공부하는 안 씨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도 커져갔다. 윤 경위에게는 딸이 한 명 있는데 공교롭게도 수정 씨와 같이 ‘정’자 돌림이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결심이 섰다. “탈북자 보호 업무를 오래 해왔지만 그동안 내가 한 사람에게 진정 도움을 주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딸로 맞아들여 평생 돌보며 이 아이가 남한에서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결심을 하게 됐죠.”

2008년 초 윤 경위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가족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윤 경위는 그때부터 가족 소풍을 갈 때, 외식을 할 때 안 씨를 불렀다. 그해 설날 고향의 본가에 가면서도 안 씨를 데리고 갔다. 윤 경위는 친척들에게 “내 딸입니다”라고 인사를 시켰다. 그해 3월 안 씨는 모 대학 간호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2008년 봄 어느 날부터 안 씨는 윤 경위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윤 경위의 부인은 ‘엄마’, 윤 경위 아들과 딸은 오빠와 동생이 됐다.

지난달 30일 안 씨는 동생 혜정 씨(26)와 오붓하게 생일상을 함께했다. “내년 생일에는 꼭 아빠가 저녁식사를 사줄 겁니다.” 윤 경위가 밝게 웃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