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시작 9개월간 18개국 1만8000km 완주
“길에서 만난 고마운 인연 덕에 숱한 고난들 넘겨”
2009년 12월 유라시아 횡단의 17번째 나라 스페인에서 김태관 씨(왼쪽)와 황인범 씨(가운데)가 현지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이들은 9개월간 유라시아를 횡단하며 18개 국가를 통과했다. 사진 제공 황인범 씨
“20대에만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취업준비에만 매달릴 수 없었죠.”
한국의 두 젊은이가 자전거 한 대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9개월에 걸쳐 페달을 밟아 하루 평균 60km씩 총 18개국, 1만8000km를 완주한 것. 도전의 주인공들은 지난해 2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태관 씨(28)와 같은 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 황인범 씨(26).
“사실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시작한 여행은 아니었어요. 여행을 좋아해 둘이 전국 이곳저곳을 여행하다 더 늦기 전에 자전거로 세계를 한번 품어보는 데 도전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됐죠.” 절친한 선후배이자 하숙집 룸메이트인 두 사람은 올해 초 뜻을 굳히고는 본격적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세계지도를 보고 구체적인 여행코스를 그려나가며 비자를 신청했고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서 후원금을 받아 경비도 마련했다. 자전거 장비를 제대로 정비하기 위해서 마지막 한 달간은 서울부터 안산까지, 유명하다는 자전거용품점 30여 곳을 샅샅이 뒤졌다. 준비는 즐거웠지만 주변의 시선은 부담스러웠다. “한창 취업 준비를 해야 할 때 웬 유라시아 횡단이냐는 친구들의 걱정부터 ‘지금 꼭 가야 하느냐’라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죠. 하지만 꿈을 포기할 순 없었어요.”
각각 취업과 졸업을 1년씩 미룬 채 이들은 결국 2009년 3월 27일 인천항에서 배에 자전거를 싣고는 ‘특별한 여정’을 시작했다. 중국 몽골 러시아의 시베리아를 지나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차례로 통과해 동유럽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도착해 태극기를 꽂기까지 여행은 잊지 못할 에피소드의 연속이었다.
“한번은 러시아의 한 산길에서 자전거가 구르는 바람에 태관 형이 다리부터 팔까지 심하게 다치고 말았죠. 피는 나는데 로밍해 온 전화도 안 터지고 발을 동동 구르다 자전거를 타고 전화가 터질 때까지 무작정 달렸어요. 겨우 보건소를 발견할 때까지 얼마나 애가 탔던지….”
하지만 고난보다는 ‘특별한 인연’과 ‘고마운 만남’이 더 많았기에 계속 페달을 밟아나갈 수 있었다. 중국의 시골마을에서 만난 남성은 “밥 한 끼 못 사주고 떠나보낸 게 미안하다”라며 200km 가까이 차를 타고 이들을 쫓아왔다. 시베리아에서 만난 한 경찰관은 이들의 도전에 감탄하며 격려금 100루블(약 3800원)을 건넸다. 옆에 있던 군인은 “이걸 보이면 러시아에서는 무조건 통과”라며 자신이 입은 제복의 부대 마크를 칼로 떼어내 줬다. “사실 러시아에서는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외국인 여행자들도 몇 시간 구금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 마크를 여권에 끼워 다닌 덕분일까요?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어딜 가느냐고 묻는 경찰들은 있었지만 다들 ‘여행 조심히 하라’며 보내더라고요.”
한류 열풍도 이들의 여행에 도움을 줬다. 드라마 ‘주몽’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이들을 ‘주몽’이라고 부르며 지낼 거처와 매끼 식사를 제공하는 등 융숭한 대접을 했다. “한번은 조그만 식당에서 만난 여자아이가 제 얼굴을 보더니 ‘고구려에 사느냐, 백제에 사느냐’를 묻더라고요.”
이들이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종료한 것은 지난해 12월 19일. 유라시아 내륙 최서단인 포르투갈 리스본 근교의 로카 곶에 태극기를 꽂으면서 대장정은 종료됐다. 둘 가운데 황 씨는 지난해 12월 24일 귀국했고 여행 중인 김 씨는 1월 말 귀국할 예정이다. 이들은 유라시아 대륙횡단을 갓 마친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다음 도전자들을 위해 여행 경험을 책으로 펴내는 것이 첫 번째 목표. 꼬깃꼬깃한 일기장을 매만지던 황 씨는 “천천히, 때론 빠르게 페달을 밟으며 흘러가는 자전거 여행에는 자동차나 기차여행과는 다른 묘미가 있다”며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을 책으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자전거 여행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할 계획도 그려보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고, 결혼하는 그런 삶도 물론 좋겠죠. 하지만 젊음으로 도전하고 또 누릴 수 있는 기쁨들 또한 크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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