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간 무료 진료 ‘슈바이처 꿈’ 이뤘어요”

  • 입력 2009년 9월 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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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학년도 1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한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침구과 김창환 교수가 31일 한방병원 진료실에서 침술을 익힐 때 사용하는 사람 형상의 구리동상 ‘동인(銅人)’과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훈구 기자
2009학년도 1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한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침구과 김창환 교수가 31일 한방병원 진료실에서 침술을 익힐 때 사용하는 사람 형상의 구리동상 ‘동인(銅人)’과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훈구 기자
난지도서 의료봉사 경희대 김창환 교수 정년퇴임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침구과 김창환 교수(65)는 33년 재직 기간 중 단 한 번도 휴가를 다녀온 적이 없다. 그런 김 교수가 지난달 29일 정년퇴임하면서 생애 가장 긴 휴가를 맞이했다. 하지만 노(老)교수는 도통 쉴 생각이 없다. “한의사는 말만 할 수 있으면 숨넘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진료할 수 있는 걸요.” 김 교수는 멋쩍게 웃었다.

김 교수의 별명은 ‘침통을 든 슈바이처’다. 그는 32년째 경희대 한의학과 3, 4학년 학생들과 함께 격주로 토요일 난지도 무료진료봉사를 나가고 있다. 1977년 쓰레기매립장이 된 서울 마포구 한강하류의 난지도에는 헌 종이, 빈 병 따위를 주워 모으는 ‘넝마주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변변한 집도 없어 천막을 지어놓고 살았다. 당시 교외 봉사활동으로 난지도를 찾은 김 교수는 천막촌에서 그가 오랫동안 꿈꿨던 ‘슈바이처의 랑바레네(아프리카 가봉의 도시로 슈바이처가 자선병원을 설립한 곳)’를 발견했다.

김 교수는 “당시 넝마주이들의 형편은 말로 다 못했다”며 “겨울에는 장작을 때어 천막 안에 연기가 자욱했고 여름에는 파리가 빼곡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넝마주이들이 고마운 마음에 대접한 커피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먼지가 쌓이고 죽은 파리가 둥둥 떠 있을 정도였다. 김 교수는 그 커피를 남김없이 마셨다. 그는 “‘웩’ 하고 뱉어버리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민망했겠느냐”며 “단백질 섭취하는 셈 쳤다”고 웃었다.

가슴 찡한 순간도 있었다. 10년 넘게 봉사를 이어가던 1990년대 초 어느 날 한 여중생이 봉사대를 찾아와 “진료를 돕게 해 달라”고 청했다. 13세의 그 소녀는 “나를 치료해주신 데 대한 보답”이라고 했다. 김 교수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옛날 차트를 뒤져봤다. 12년 전 차트에 배앓이로 치료를 받은 아이의 이름이 있었다. 건강하고 밝게 자라준 아이가 기특하고 예뻤다. 김 교수는 “얼마나 고맙던지 눈물이 다 났다”고 덧붙였다.

난지도는 1999∼2002년 공사를 거쳐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했다. 한동안 이사를 간 난지도 주민들을 따라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과 동작사회복지관 등으로 무료진료를 나갔던 김 교수는 공사가 끝나고 난지도 주민들이 돌아오자 인근 성산사회복지관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위생상태가 좋지 않고 말을 잘 따르지 않는 환자가 많아 2차 감염을 걱정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고가 없었던 것이 가장 다행”이라는 김 교수는 이제 난지도 주민들 사이에서 ‘슈바이처 선생님’이라고 불린다. 어릴 때부터 슈바이처 박사를 꿈꾼 김 교수에게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별명이다.

경희대는 29일 퇴임식에 맞춰 김 교수를 명예교수로 임명했다. “어쩐지 1학년에 새로 입학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김 교수는 “다음 주 토요일 또 난지도에 간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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