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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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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 1970년, 그는 꽃다운 스물다섯 살이었다. 외국생활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한국 간호사의 3, 4배 되는 간호사 연봉에 끌려 독일 파견 간호사로 독일 땅을 처음 밟은 박정자 씨(64)는 동료 11명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근처의 수녀병원에 갔다.
“부모님 밑에서 편하게 일하다가 갑자기 말도 안 통하는 곳에 왔는데 수녀님들은 너무 까다롭지, 고국은 그립지 날마다 눈물을 흘렸죠.” 독일 생활의 유일한 낙은 한국에서 온 가족들의 편지. 편지를 보고나면 으레 눈이 퉁퉁 부었다.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부지런하게 독일어를 익히며 독일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독일 간호사들이 담배를 피우며 편하게 있을 때 환자들 한 번이라도 더 챙기고 빨리 움직였죠. ‘내가 잘못하면 한국사람 욕 먹이는 거다’란 생각으로 이리저리 뛰었더니 어느 순간부터 병원장도 환자들도 저만 찾더라고요. 선물 꾸러미 가져오는 환자, 집에 초대하는 환자도 부지기수였죠.”
어느덧 수간호사가 된 박 씨는 한국에서 온 신입 간호사들에게 “지각하지 마라” “병원에 있는 음식을 함부로 먹지 마라” 등 잔소리를 하며 독일생활도 일러주고 일이 힘들어 병원을 찾은 한국 출신 광원들의 ‘꾀병’을 살짝 눈감아 주기도 하는 고참이 됐다.
인연도 찾아왔다. 한국에서 광원을 지원해 온 한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 후 가정을 꾸려서도 그녀는 야간 당번을 서가면서 두 딸을 키웠다.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박 씨를 비롯해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파견돼 타고난 성실함으로 독일병원과 환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간호사 50명이 ‘합창단’을 꾸려 고국을 방문했다. 이들이 합창단을 꾸린 것은 2007년. 이영숙 부단장(61)은 “노래를 부르며 그리움을 달래는 지역 합창단은 몇 개 있었죠. 근데 2007년 광복절 행사에 모였을 때 여러 지역 사람들이 함께 입을 맞춰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바로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다”고 말했다.
2007년 50명의 단원으로 창단된 ‘재독한인여성합창단’은 현재 120명으로 단원이 늘었다. 대부분 1970년대에 독일로 간 간호사 출신들이다. 독일의 여러 도시에 떨어져 살지만 한두 달에 한 번 있는 연습 때는 함부르크에서도 베를린에서도 7∼8시간 운전을 해서라도 모두들 참석한다.
독일에서 공연을 해오던 이들은 ‘나이가 다들 많은 만큼 더 늦기 전에 고국 공연을 한번 하자’는 생각에 첫 고국 공연을 계획했다. 초청하려는 이도, 후원회사도 없었지만 자비를 모으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후원금을 내 공연장소를 섭외하고 숙소를 구했다. 이들은 드디어 4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11일 광주 광산문화예술회관 대극장(이상 오후 7시 반)에서 공연을 갖는다. 공연 레퍼토리는 ‘고향의 봄’ ‘동무생각’ ‘고향의 노래’ 등 평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들로 짰다. 평소 독일에서 함께 연습해 온 도르트문트교회연합 아가페합창단 음악감독인 정용선 씨가 이번에도 지휘를 맡는다.
고국에서의 첫 공연을 앞두고 이들은 설렘에 들떠 있지만 한국에 대한 서운함도 살짝 내비쳤다. 합창단 운영위원장 박학자 씨(65)는 “우리는 고향을 떠난 이후로 한 번도 고국을 잊어본 적이 없는데 한국은 우리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독일 파견 간호사가 누구인지, 나가서 무얼 했는지도 모르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서 40여 년 전 먼 타지에서 고국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던 우리들을 한 번이라도 떠올려줬으면 해요.” 공연 문의는 www.pmgkore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