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미전향장기수 양희철씨 34세 약사와 '백년가약'

  • 입력 2000년 1월 13일 01시 35분


37년간 미전향 장기수로 복역하다 출소한 60대 할아버지와 30대 처녀 약사가 백년가약을 맺는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해 3·1절 특사로 풀려난 양희철씨(65)와 약사 김용심씨(34). 둘은 16일 오후 1시 서울 관악구민회관에서 화촉을 밝힌다.

양씨는 고려대 상과를 졸업한 뒤 6·25때 월북했다 남파된 친형을 따라 62년 월북했다가 그해 다시 돌아와 간첩혐의로 체포돼 37년간 기나긴 감옥생활을 했다. 신부 김씨는 경희대 약대 출신으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복학해 약사자격을 딴 뒤 현재 서울 을지로에 있는 한 대형약국에서 근무중이다.

두 사람이 31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은 양씨가 출소한 다음날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 합동회견장에서 첫 만남을 가지면서부터. 장기수 후원회원이었던 김씨는 양씨가 한의사 자격증은 없지만 누구보다 한의학에 정통하다는 소문을 듣고 양씨를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찾아갔던 것. 양씨는 교도소에서 한의학 관련서적을 두루 섭렵해 출소 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우리탕제원’을 운영하며 동료장기수들을 돕고 있었다.

김씨는 한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우리탕제원’을 하루가 멀다하고 찾았고 두 사람은 1년 가까이 함께 공부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엔 난관도 많았다. “어떻게 딸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 하느냐”는 말과 함께 “노인네가 주책”이라는 비아냥도 들렸다.

이 때문에 양씨는 한때 결혼을 포기하려 했으나 김씨는 “나는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것. 김씨는 또 양씨보다 나이가 적은 어머니 등 가족까지 끈질기게 설득해 양쪽의 허락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김씨는 “선생님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인생이 너무 존경스러워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씨는 “신부를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누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새 출발의 포부를 밝혔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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