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씨는 고려대 상과를 졸업한 뒤 6·25때 월북했다 남파된 친형을 따라 62년 월북했다가 그해 다시 돌아와 간첩혐의로 체포돼 37년간 기나긴 감옥생활을 했다. 신부 김씨는 경희대 약대 출신으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복학해 약사자격을 딴 뒤 현재 서울 을지로에 있는 한 대형약국에서 근무중이다.
두 사람이 31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은 양씨가 출소한 다음날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 합동회견장에서 첫 만남을 가지면서부터. 장기수 후원회원이었던 김씨는 양씨가 한의사 자격증은 없지만 누구보다 한의학에 정통하다는 소문을 듣고 양씨를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찾아갔던 것. 양씨는 교도소에서 한의학 관련서적을 두루 섭렵해 출소 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우리탕제원’을 운영하며 동료장기수들을 돕고 있었다.
김씨는 한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우리탕제원’을 하루가 멀다하고 찾았고 두 사람은 1년 가까이 함께 공부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엔 난관도 많았다. “어떻게 딸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 하느냐”는 말과 함께 “노인네가 주책”이라는 비아냥도 들렸다.
이 때문에 양씨는 한때 결혼을 포기하려 했으나 김씨는 “나는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것. 김씨는 또 양씨보다 나이가 적은 어머니 등 가족까지 끈질기게 설득해 양쪽의 허락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김씨는 “선생님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인생이 너무 존경스러워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씨는 “신부를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누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새 출발의 포부를 밝혔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