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6·25 49돌]어느 母子의 「태극기」나라사랑

  • 입력 1999년 6월 24일 19시 54분


무명용사 5700여명의 유해가 모셔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그 중앙의 현충탑 옆에는 오늘도 호국영령의 충혼(忠魂)을 위로하듯 대형 태극기가 하늘 높이 나부끼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태극기를 실향민 유귀순(柳貴順·여)씨가 30여년동안 대를 이어 매달 첫째주 일요일 새벽, 새 것으로 바꾸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참배객은 없다. 96년 74세로 숨지기까지 유씨는 단 한차례도 이 ‘소중한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그의 일은 양아들 김모씨(49·토목기사)에게 이어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유씨의 태극기 사랑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원한과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깔려있다.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유씨는 6·25전쟁 와중에 자신을 제외한 일가족이 공산당에 의해 총살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주와 반동이라는 이유였다. 유씨는 그 직후 20대 후반의 나이로 혈혈단신 남하했다.

서울 용산구 용산시장 한 구석에 작은 계란도매가게를 차려 넉넉하지는 못한 살림이었지만 유씨의 애국심은 유별났다. 공산치하에서 벗어나 자유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모두 국가와 국군의 덕분이며 그 고마움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었다.

“어머니는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국립묘지를 찾았지요.”

60년대 중반, 어느날 국립묘지를 찾은 유씨는 노랗게 빛이 바랜 낡은 태극기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뒤 매달 새 태극기를 바꿔다는 그의 ‘나라사랑’이 시작됐다.

유씨의 맏딸 이정아(李正娥·44)씨는 “아무리 몸이 아파도 어머니는 이 일을 거르지 않았다”며 “돌아가시기 전 ‘누가 이 일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유언하셨고 오빠(김씨)가 나섰다”고 말했다.

“이 태극기의 의미와 이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장병들의 얼을 우리 후손들이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머니의 유품인 태극기를 어루만지며 이씨는 대를 이어 ‘나라사랑’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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