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민아]우리는 ‘호황’, 그들은 ‘병목’인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7월 14일 23시 09분


이민아 산업1부 기자
이민아 산업1부 기자
미국 국방부는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를 중국 군사 관련 기업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인민해방군(PLA)과 연계돼 미국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혐의다. 그런데 애플이 CXMT의 메모리를 자사 제품에 넣는 시험을 시작했다고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애플은 나아가 백악관과 상무부를 상대로 CXMT 제품을 쓰게 해달라고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D램 값이 너무 올라서다. 인공지능(AI) 서버 수요가 메모리를 빨아들이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애플도 결국 전 제품군의 값을 올렸다. 애플이 D램을 살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세 곳뿐이다. 세 회사가 부르는 값을 그대로 쳐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CXMT를 시험대에 올린 것은 네 번째 선택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애플의 원가를 밀어 올린 그 세 곳 중 둘이 한국 기업이다. 한국은 지금을 ‘슈퍼 사이클’이라 부른다. 삼성전자는 2분기(4∼6월) 영업이익 89조4000억 원으로 전 세계 민간 기업을 통틀어 분기 최대 기록을 새로 썼다. SK하이닉스는 10일 나스닥에 상장해 265억 달러(약 40조 원)를 조달했다. 2014년 알리바바(250억 달러)를 넘어선 외국 기업 역대 최대다.

태평양 건너에서 이 실적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7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메모리 가격 급등을 “1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대홍수”라고 했다. 브래드 라이트캡 오픈AI 최고운영책임자(COO)는 3월 AI 확장의 ‘병목’을 두고 “지금은 메모리다”라고 했다. 일론 머스크는 “팹을 짓지 않으면 칩 월(chip wall·반도체 장벽)에 부딪힐 것”이라며 ‘테라팹’을 짓겠다고 했다.

무엇을 ‘대홍수’, ‘병목’, ‘장벽’이라 부르는 순간 그것은 넘어서야 할 대상이 된다. 애플이 블랙리스트 기업의 문을 두드린 것, 머스크가 팹을 짓겠다고 나선 것, 구글과 아마존이 맞춤형 칩을 직접 설계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일이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의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기업의 선택이다. 단, 정부가 나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본이 먼저 겪었다. 헤리티지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1985년 미국 시장에서 팔린 256K D램의 92%가 일본 기업 제품이었다. 그해 인텔은 D램 사업을 접었다. 일본에는 산업의 정점이었지만, 미국에는 ‘위협’이었다.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에는 ‘미국에 공장 건설’ 조항은 없었다. 대신 이듬해 미국은 협정 위반을 이유로 일본산 전자제품에 100% 보복관세를 물렸다.

4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더 직설적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9일(현지 시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국 안에 메모리 공장을 지으라고 대놓고 말했다. 여기에 ‘칩플레이션’이 겹쳤다. 메모리 값이 오르면 스마트폰과 PC 값이 오르고, 그것은 미국의 소비자물가로 잡힌다. 반도체가 물가를 자극하는 순간 트럼프 행정부에는 시장에 개입할 명분이 생긴다.

같은 숫자를 놓고 우리는 실적을 읽고, 그들은 원가를 읽는다. 원가로 읽는 쪽이 규칙을 정한다면 그 규칙은 언젠가 바뀐다. 상대가 이를 재난이라 부르는 동안 우리가 호황에만 취해 있다면, 규칙이 바뀌는 순간을 가장 늦게 알아차리는 쪽도 우리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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