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전쟁은 제조업 헤게모니 쟁탈전이다. 변화된 무역 환경에서 제조업 경쟁력은 국가안보의 문제가 되고 있다. 블록화된 환경하에서 공급망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규제와 같은 비관세 장벽이 아닌 직접적인 관세전쟁 형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우방국 간 공급망을 연결하는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무차별적으로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미 제조업의 부활이라는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제조 경쟁력 회복은 트럼프 행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제조업의 뒷받침 없이는 미국이 관세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중국은 알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세계적 기조의 변화다. 표면 아래에서 흐르는 ‘딥 커런트(deep current·심층 해류)’를 읽어야 한다.
제조업을 주로 하는 국가로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이 있다. 우리와 전면적으로 경쟁하는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2015년 ‘중국제도2025’라는 10년 대계를 세우고 집행했다.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AI 분야에서 충격을 준 데 이어 중국 CATL이 나트륨 이온 배터리 기술을 공개하며 전 세계 배터리 기업들을 경악하게 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은 약진 중이다. 중국 전기차는 전 세계 시장의 62%를 차지하고 있다. 태양광 분야는 경쟁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내수 수요 초과분을 해외에 판매하면서 한국 석유화학의 위기는 시작됐다. ‘중국제조2025’의 결과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제조업의 상징이던 독일 제조업의 쇠락은 충격적이다. 2024년 2월 블룸버그통신은 ‘독일 제조업의 황혼’이라는 기사를 냈다. 2023년 7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의존하다 중국 자동차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제조 경쟁력을 상실한 독일은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부상에서 보듯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해 보인다. 노후화된 인프라, 숙련 노동력의 고령화, 관료주의와 제조업에 대한 투자 부재, 경직적 복지 재정은 독일 제조업의 영광을 과거형으로 만들었다.
우리 기업들은 국가전략의 부재하에 모든 전선에서 고전하거나 패퇴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우리 기업들보다 좋아서 한국 제조업의 위기가 온 게 아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가 아니라 실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상실되고 있고 증시는 이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중국에 밀리고 있는 제조 경쟁력 상실에 대응하는 것이다. 대만도 반도체 산업에서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본만큼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이 우리에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생존을 위한 국가 차원의 산업전략을 수립하고 10년 이상의 긴 호흡으로 집행해야 한다. 우리가 제조업 없이 금융이나 관광산업으로 지금의 번영을 유지할 수 없다. 이런 현실을 외면해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국가 차원에서 한국 제조업 경쟁력 유지 전략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것은 우리의 안보 문제이고, 생존 문제다. 새 정부는 국가 차원의 산업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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