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동안 ‘이러다 우리 다 죽는다’는 처절한 민심을 확인했을 법도 한데 여야 둘 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 추가경정예산(추경)과 연금개혁 등 2월 임시국회의 시급한 과제를 두고 여전히 입씨름만 하고 있다. ‘캐스팅보터’ 중도층 표심은 잡아야겠으니 경쟁적으로 떠들기는 하는데, 정작 논의는 전혀 진전시키지 못하는 비겁하고 무능력한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연휴 다음 날 정부에 추경 편성을 촉구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요구해 온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도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치 통 큰 양보 같아 보이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그는 “효율적인 민생 지원 정책이 나오면 (민생회복지원금 예산이 포함되지 않아도) 상관이 없으니 추경을 편성해 달라”고 조건을 달았다. 민주당 관계자도 “정부가 일단 안을 갖고 오면 어떤 식으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제안”이라고 부연했다. 결국 정부더러 마음에 드는 안을 들고 오라는 거다.
게다가 국정을 운영해야 할 여당은 될 일도 되레 더 안 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이날 “(민주당이) 추경을 입에 올리려면 작년 말 예산안의 일방적 삭감 강행 처리에 대한 대국민 사과가 우선”이라고 했다. 계엄 후폭풍 속 민주당이 야당 단독으로 삭감 수정안을 처리한 것에 대해 사과부터 하라는 것이다.
2일엔 권성동 원내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아 이 대표의 민생회복지원금 포기 발언에 대해 “악어의 눈물”이라며 “진심이라면 여야정 협의체부터 복귀하라”고 했다. 그러자 다음 날 이 대표는 “국민의힘의 추경 거부로 협의체 실무협의가 진행이 안 되는 건데 왜 야당이 불참한 것처럼 얘기하느냐”고 맞불을 놨다. 추경은 타이밍이 관건인데, 이런 식의 기싸움 속에서 논의가 진전되긴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타결 직전 엎어진 연금개혁을 두고도 여야는 도돌이표만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모수개혁’부터 하자”는 말만, 국민의힘은 “국회 차원의 연금개혁특위를 따로 꾸려 ‘구조개혁’까지 같이 하자”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 중이다. 연금개혁이 지연되면서 매일 적자가 885억 원씩, 한 달이면 2조7000억 원이 쌓인다는데, 복지위면 어떻고 특위면 어떤가. 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어차피 국민의힘은 연금이든 추경이든 이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뭐가 됐든 이재명의 성과로 만들어 주긴 싫을 테니 말이다”라고 하던데 그 말이 차라리 제일 솔직해 보인다. 결국 그 어디에도 정치는 없다.
이번 설 연휴 기간 전 세계가 중국발 저가 인공지능(AI) 모델인 ‘딥시크(Deepseek)’의 등장으로 충격에 빠졌다. 남들은 이미 AI 전쟁을 시작했는데 우리 정치는 이재명이 경제를 살리자며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고 했다고 “중국 공산당이 내놨던 흑묘백묘론을 끄집어냈다”(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며 철 지난 색깔 논쟁이나 벌이는 수준이다. 이런 여야에 AI는커녕 민생경제 회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흑묘든 백묘든, 여든 야든, 이런 식으로 입만 살아서는 차기 대선 승리가 어려울 것이란 점부터 깨달았으면 한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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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4 08:36:52
내가 볼 때는 ... 찢재명 수준이 '흑묘백묘'의 깊은 의미를 알 리가 절대 없다고 보는 데???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던지고 보는 새ㄱ끼가 ... 등소평의 백 년을 엎드려 참으라는 말의 의미를 알 턱이 있냐 ㅋㅋㅋㅋ
2025-02-04 09:38:36
맨날 입으로 다하는, 우리 정치권-대대손손 영원할 것 같은 데, 어쩌지요?
2025-02-04 08:54:31
"시작이 반인데 입이 우선 살아야 합니다."라고 웬 시민이 말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