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조은아]佛 마크롱이 韓 신당에 훈수를 둔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4일 2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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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파리 특파원
조은아 파리 특파원
4·10총선을 치른 한국 정치권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주 언급된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한국의 마크롱’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대표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득권에 사로잡힌 집권 좌파 사회당을 떠나 개혁적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를 창당했다. 그로부터 1년 만인 2017년, 당시 39세로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에 올랐다. 올해 39세인 이 대표도 기성 정당을 나와 당명에 개혁을 박은 신당을 꾸려 국회에 입성한 만큼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조국혁신당도 3월 창당한 지 한 달 만에 원내 3당에 올라 앙마르슈 초기의 열풍에 비견된다.

지금은 ‘르네상스’로 바뀐 중도성향 정당을 이끄는 마크롱 대통령은 물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연금개혁, 이민개혁, 교육개혁 등 멈추지 않는 ‘개혁 릴레이’로 저항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재집권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제3지대 신당들의 모델이 될 법하다. 게다가 투자은행 출신의 ‘엘리트’란 이미지를 극복하고 각종 경제지표를 모범적으로 개선해 이웃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마크롱 신당’의 실용-소통의 힘

중도신당을 꾸려 굵직한 성과를 낸 마크롱 대통령은 한국 신당들에 어떤 조언을 건넬 수 있을까. 첫째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실용주의를 택하라’일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 정책에선 친기업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냈지만 이민, 인권 등에선 진보적이었다. 이 때문에 사회당은 물론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런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당시 민심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꼈고,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정치를 원했다.

이를 위해 인사 때도 당파에 얽매이지 않는 탕평책(蕩平策)을 썼다. 제1야당인 공화당의 에두아르 필리프를 3년간 총리로 뒀고 같은 당 출신인 브뤼노 르메르 경제장관은 지금까지 7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직 경험이 없는 시민단체 전문가들도 두루 기용됐다.



분노의 정치에 혁신 무색해지나

두 번째 조언은 ‘소통을 멈추지 말라’가 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첫 선거 유세 때 ‘그랑 마르슈’라는 독특한 캠페인을 벌였다. 집집마다 방문해 유권자를 심층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2030세대 젊은 지지자들과 함께 현장을 찾아가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현장에서 듣는 국민의 목소리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덕에 실용적 정책이 더 탄력을 받게 됐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긍정적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할 것 같다. 2017년 그가 처음 집권하며 돌풍을 일으켰을 때 영국 BBC는 “프랑스에는 매우 비관적인 분위기가 만연했는데 그는 매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가져왔다”고 평했다. 기성 정치인들은 상대를 깎아내리기 바빴지만 그는 프랑스인들이 어떤 기회를 갖게 될지 제시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지금의 신당들에 낮은 점수를 줄지도 모른다. 신당들에선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보단 ‘반윤’ ‘반이’ 또는 ‘반검찰’을 외치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이 대표는 당선 직후 자신이 왜 당을 나와 출마할 수밖에 없었는지 윤석열 대통령이 곱씹어 보라는 날 선 말을 남겼다. 조국혁신당도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특검을 1순위로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분노의 정치로 개혁과 혁신의 이름이 무색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마크롱#韓 신당#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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