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해진 김정은… 北의 체제 변화 대비해야[기고/남주홍]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2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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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홍 전 국정원 차장·경기대 석좌교수
남주홍 전 국정원 차장·경기대 석좌교수
북한의 체제 변화는 가능한가? 여기서 체제 변화란 정권교체나 붕괴(regime change) 같은 급변 사태가 아니라 개혁, 개방같이 점진적 노선 변경(transformation) 유도를 의미한다.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현실성이 있고 또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이를 자유와 평화의 북진 논리로 완곡히 표현하고, 북의 전체주의적 폭정과 인권 탄압에 대응해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전파해야 3·1정신이 자유통일로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목표와 부합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대북 정보전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어떠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북한 체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선의의 공작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남과 북 모두가 사는 길이다. 구소련의 해체와 동독의 붕괴 및 동유럽 체제 혁명 과정, 그리고 중국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화와 베트남의 실용적 도이머이 혁신정책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한마디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아래의 집단적 공멸 의식이 혁명적 임계점에 이르는 때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이른바 대를 이어 충성하는 세습적 봉건왕조이기 때문에 경우가 다르긴 하다. 그러나 1994년 김일성이 핵위기 속에 왜 갑자기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제안하며 정면돌파하려 했는지, 그리고 그 후 김정일이 남한을 핵인질 삼아 어떻게 미국과 평화 담판을 시도하려 했는지 정보 현장에서 지켜봤다. 당시 북한의 선택은 한중 및 한소 관계 정상화 속 고립 위기에 처한 평양의 생존 전략이었다. 또한 이번에 김정은이 아예 통일은 없다고 선언하고 우리 식대로 살겠다며 오히려 전쟁까지 위협하고 나선 것도 역설적으로 그만큼 절박한 체제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대북 자유화 정책 방향은 새로 작성하는 통일 방안에 담도록 하되, 전략적으로 몇 가지 우선순위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남북 간의 평화는 돈 주고 살 수 없고 통일은 대박이기 전에 대란의 위기 과정을 수반한다는 냉엄한 현실을 먼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는 실질적으로 안보가 곧 통일이라는 철저한 전략현실주의를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서독의 대동독 흡수통일의 원동력이었고 이스라엘의 힘에 의한 평화정책이다.

둘째, 통일 비용이라는 차원에서 한미 연합작전 체제의 평시 억제력 및 전시 방어력을 더욱 공세적으로 실전화시켜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무모한 핵무력 군비경쟁은 바로 자멸 행위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저들의 군비경쟁 출혈 징후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셋째, 미 국가정보국(DNI)처럼 정보가 최대의 무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 땅에 유입시킬 수 있는 각종 자유화 바람은 물론이고 정보공작 차원의 전후방 심리전을 체계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이 통일지향적 전선에는 성역이 없다.

넷째, 이와 연계해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승부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 인권 문제는 국제 공조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명분과 실리가 모두 있으니, 대북 압박의 채찍과 인도적 지원의 당근을 동시에 쓰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효과가 있다. 결국 공산주의자들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온건 평화론자들이 아닌 강력한 전략현실주의자들이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남주홍 전 국정원 차장·경기대 석좌교수


#김정은#北#체제 변화#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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