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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길진균]난무하는 ‘심판론’, 누구를 심판할 것인가

입력 2024-02-12 23:48업데이트 2024-02-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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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운동권-양당 3개 심판론 작동
서로가 서로를 심판해 달라는 與野
길진균 논설위원길진균 논설위원
집권 중반기에 치러지는 총선은 대개 정권 심판이냐 아니냐의 싸움, 즉 중간평가의 프레임(구도) 속에 치러졌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전통적 프레임인 야당의 정권 심판론(창)과 여당의 국정 안정론(방패)의 대결은 없다. 모두 ‘창 대 창’의 충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심판’, ‘검찰 독재 심판’이라는 프레임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윤석열 정권의 독단과 무능”을 강조하는 것은 그 연장선상이다.

국민의힘은 ‘야당 심판론’을 외친다. 더 구체적으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기득권 386 청산”을 주장한다. 운동권 심판론도 야당을 운동권이란 틀에 가둬 고립시키겠다는 프레임 전략의 일환이다. ‘정권 대 운동권’, 쌍심판론으로 선거 구도가 굳어지면 정권 심판론이 희석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여기에 설 연휴 시작과 동시에 이낙연, 이준석 공동대표 체제의 ‘개혁신당’이 출범했다. 신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잠시 접어두자. 주목할 점은 개혁신당의 출현으로 쌍심판론에 더해 ‘양당 심판론’이 또 하나의 프레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신당은 신당의 비전을 설명하면서 “기득권 양당 체제를 그대로 방치해선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밝혔다. 나라를 위해 양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논리다.

얽히고설킨 3당 3색의 ‘심판론’이 난무하면서, 각 당이 꼬리를 물며 서로를 심판해 달라고 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앞다퉈 상대의 패배를 위해 투표해 달라는 ‘부정적 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총선에선 한동훈 이재명 이준석 등 여야의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대부분 전면에 섰다. 패배한 쪽은 치명상을 입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승리에 도움이 되는 전략이라면 뭐라도 쓸 태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당은 대의보다는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며 끊임없이 주판알을 튕긴다. 대다수 후보들도 그에 맞춰 줄서기와 이합집산만 고민한다. 1년 전에 끝냈어야 할 선거구 획정이 감감무소식인 것도 이들의 손익계산 탓이다. 선거판이 “저쪽을 심판해야 한다”는 외침으로 가득 차면서 청년, 여성,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참신한 인사들의 목소리는 공명을 일으킬 공간을 잃고 있다. 거기다 복잡한 프레임 속에 유권자들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하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놓고 또 고민해야 한다.



누구나 총선 때가 되면 멋지게 선의의 경쟁을 하는 정당과 후보들 가운데 누구에게 표를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상황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희망은 이뤄지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누가 더 비호감인지를 따져봐야 하는 선거가 펼쳐지고 있다. 설 연휴 기간 발표된 한 언론의 패널조사에 따르면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79%, ‘정치 이야기가 피곤하고 피하고 싶다’ 61% 등으로 나타났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혐오가 깊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건 총선 결과에 따라 ‘내 삶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내 가정의 경제, 내 아이에게 물려줄 나라의 앞날이 달려 있다. 선택의 기준은 간단할 수 있다. 먼저 정치를 잘한 정당이 있다고 판단하면 두 표 다 행사하면 된다. 다음으로 정치를 못했거나 못할 것같이 생각되는 정당이 있다면 그 당을 뺀 정당에 두 표를 찍거나 한 표씩 나눠 찍으면 된다. 잘 못하는 정당을 키워주는 것만큼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에 해가 되는 선택은 없다. 정치혐오에 빠지는 대신 유권자 한 명이 던지는 표가 얼마나 아픈지 알려줘야 할 때다. 아울러 최악의 정치를 만든 장본인들은 상대 심판을 유권자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반성하는 모습부터 보이는 것이 옳다.

오늘과 내일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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