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안에 대한 어떤 ‘진심 토크’ [동아시론/김태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3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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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계획 발표 후 여러 비판도 있지만
이젠 반드시 개혁 이루기 위해 힘 모을 때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고령사회연구원장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고령사회연구원장
K 교수: 가장 핵심인 보험료율 인상 수치가 빠져서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이 많다. 선거 앞두고 몸 사리기인가?

고위 당국자:
숫자 내놓는 순간, 다른 내용 다 묻힌 채 그것만 갖고 난리칠 것 아닌가. 충분히 높이면 부담 크다고 야단일 테고, 조금만 올리면 이걸로는 태부족이라고 비난할 것 아닌가. 어떡해도 총선에는 절대 이로울 리 없다. 어쨌든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함을 분명히 했다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께서도 약속하셨다. 구체적인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반드시 이끌어내겠다고.

K 교수:
소득대체율 상향은, 전문가 위원회 원안에는 없었는데 정부 측 요구로 포함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소득대체율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나?

고위 당국자:
정부도 곤혹스럽다. 이는 일각에서 계속 주장해 온 것이다. 공론화로 결정하겠다면서 이것만 아예 테이블에도 못 올리게 하면 어찌 되겠는가. 그보다는 소득대체율을 상향하려면 (재정 안정화를 위한 보험료율 인상에다) 추가로 보험료율을 더 높여야 함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걸 강조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K 교수:
가입기간 확충을 위해 출산 크레디트를 첫아이부터 부여하고, 6개월인 군 복무 크레디트도 복무기간 전체로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면 재정부담이 더 늘어나는 것 아닌가?

고위 당국자:
연금개혁에서는 재정 안정화가 중요하지만, 노후소득 보장 강화도 소홀할 수 없다. 국민도 혜택은 그대로인데 부담만 늘리는 개혁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노후소득 보장 강화에는 소득대체율 상향보다 가입기간 확충이 우선이다. 우리의 가입기간은 유럽 국가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미수급자가 많고 수급액도 적다. 왜 일은 더 오래 하는데 가입기간은 절반인가. 가입기간 늘려서 미수급자 없애고 저소득층 수급액 늘리겠다. 출산 및 군 복무 크레디트 확충은 이를 위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강화 등을 통해 현행보다 대폭 늘려야 한다. 물론 재정부담은 커진다. 그래도 할 것이다. 해야 할 것은 피하지 말고 해 내자는 게 이번 정부 방침이다. 아울러 재정부담이 커진다고 해서 절대 채무를 늘리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사회보장세라도 걷어서 충당하겠다.

K 교수:
전문가 위원회가 제안한 수급개시연령 추가 조정(65세→68세)에는 선을 그었다. 기대 수명 연장 추세를 고려하면 필요할 텐데, 부정적인 이유는…?

고위 당국자:
솔직히 정부도 동의한다. 위원회 제안은 지금 당장 올리자는 게 아니다. 65세로 예정된 수급연령을 점차 높여서 2048년에 68세가 되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 60세인 퇴직연령이 25년 뒤에도 그대로일 수는 없다. 재고용이든 정년 연장이든 그때가 되면 대다수가 60대 후반까지 일할 것이고, 그에 맞춰 수급개시연령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논쟁하고 합의할 게 한가득인데, 이것까지 포함해서 복잡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뿐이다.

K 교수:
보험료율 인상 시 연령대에 따라 차등 인상하겠다고 했다. 오랜 기간 납부해야 하는 청년세대와 짧은 기간만 납부할 중장년층 간 형평성을 위한 것 같은데, 실제 가능하겠는가?

고위 당국자:
연령대별 보험료율 차등이라는 게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것이고, 중장년층 반발로 실행이 쉽지 않은 것도 맞다. 제도 자체보다는 이를 제안하는 ‘의미’를 헤아려 달라. 이는 연금개혁에 따른 부담을 모든 세대가 공평하게 분담하자는 의지의 표명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다양할 수 있다. 단, 개혁의 부담과 혜택은 공정해야 한다.

K 교수:
자동안정화장치 또는 확정기여방식(DC)을 검토하겠다고도 했는데, 정말 이를 도입할 생각인가?

고위 당국자:
이것도 실제 도입 여부보다는 이를 꺼낸 의미를 알아달라. 까놓고 말해서 우리 현실과는 맞지 않다. 도입하더라도 훨씬 뒤에야 가능하다. 자동안정화장치와 확정기여방식의 목적은 결국 ‘낸 것만큼 받게 하는 것’이다. 이 둘을 논의하자는 것은, 지속가능성의 궁극 해법은 낸 것만큼 받게 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고, 이를 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향후 이뤄질 공론화 과정에서도 이걸 관철하겠다. 정치 상황 탓에 제대로 밝히지 못했지만, 정부는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에 정말 진심이다. 반드시 해내겠다. 지켜봐 달라.

요즘 연금개혁 계획 발표를 두고 하도 비판이 많길래, 정부의 말 못 하는 고충을 헤아려 고위 당국자와의 가상 토크로 정부 속마음을 드러내 봤다. 이제 비판보다는 천명한 대로 반드시 연금개혁을 이루도록 힘을 모으자. 글쎄, 내가 정부 속마음을 잘못 읽은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고령사회연구원장



#연금 개혁안#보험료율 인상#맹탕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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