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Z 면적 미중보다 큰 요충지… “엑스포 유치 중요한 표밭”[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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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태평양도서국들과 첫 정상회담
수자원-미래 에너지자원 풍부… 세계 참치 어획량 70% 차지
2021년부터 미중 새 격전지… 바이든, 이달 파푸아뉴기니 방문
유엔회원국 12개국-엑스포 11개국… “한강의 기적 노하우 전수 계획”

신나리 정치부 기자
신나리 정치부 기자
인구 1600명, 여의도 면적 약 90배(259㎢)에 달하는 태평양 섬나라 니우에. 세계 최대의 산호초 섬이 있는 이 나라는 29일 한국과 정식 외교 관계를 맺은 192번째 수교국이 됐다. 이에 따라 한국의 미수교국은 코소보, 시리아, 쿠바 등 3곳만 남았다. 주(駐)피지 대사관과 주파푸아뉴기니 대사관만 있던 태평양도서국(태도국) 내 외교공관도 내년까지 1곳을 더 추가 개설할 예정이다. 정부가 29일부터 이틀간 개최하는 한-태도국(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는 이른바 ‘푸른 태평양의 대륙’이라 불리는 이 지역 섬나라들을 끌어안는 첫 발걸음이다. 정부는 한반도와 주변 4강과의 외교에 매몰돼 있던 한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말뿐 아닌 행동으로 펼치는 무대에 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 2021년부터 미중 영향력 확대 격전지 부상

태평양 지역의 풍부한 수산 자원과 미래 에너지 자원과 같은 잠재력을 갖춘 태도국은 일찌감치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매김했다. 통상 태도국은 태평양 중부·서부와 남태평양에 위치한 14국을 가리킨다. 여기에 프랑스 자치령인 뉴칼레도니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와 호주, 뉴질랜드까지 총 18곳이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의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PIF 회원국 전체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면적을 합치면 4000만 ㎢로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캐나다를 합친 면적을 초월할 정도다. 전 세계 참치 어획량의 70%, 국내 참치 어획량의 약 90%(약 1조 원)가 나오는 핵심 어장이다.

미국과 중국, EU, 일본 등 주요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태도국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해 공을 들여 왔다. 전통적으로 미국 영향력이 강했던 이곳이 미중 간 격전지로 부상한 건 중국이 솔로몬 제도와 2021년 안보협정을 체결한 이후부터다. 중국은 2018년 시진핑 주석의 파푸아뉴기니 방문 때 중-태도국 정상회의를 열었고 미국은 지난해 9월 워싱턴으로 이들 정상을 초청해 정상회의를 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하순 미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파푸아뉴기니 방문도 예정돼 있다.

뒤늦게 태도국의 중요성을 깨달은 정부도 잰걸음으로 보폭을 좁히고 있다. 2011년부터 3년마다 해오던 외교장관회의를 2년 주기로 단축해 지난해 10월까지 5차례 개최했고 내친김에 첫 정상회의까지 열었다. 태도국과 독자적인 정상회의를 개최한 나라는 일본, 프랑스, 중국, 인도, 미국 정도다. 태평양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태도국과의 접점을 찾고 차별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까다로운 숙제다.

● 韓, 기후변화 대응 등 맞춤형 청사진 제시
이번 정상회의의 정상 선언은 한국과 태도국 간의 공동 번영을 위한 연대를 확인하고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태도국의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사업들을 포함한 여러 가지 행동계획에만 자그마치 54개 협력사업이 포함돼 있다.

50여 가지 사업들은 크게 ‘회복(Resilience)’ ‘강화(Reinforcement)’ ‘재활성화(Revitalization)’ 등 ‘3R’로 분류된다. 회복 분야에서는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의 최전선에 있는 태도국들의 수요에 기반한 맞춤형 기후변화 예측 사업 등이 포함돼 있다. 태도국들에 기후변화 의제는 국가의 존폐가 달린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다. 2021년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교장관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에서 “말뿐인 약속만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수중연설로 기후변화 문제를 호소한 ‘이색 영상’은 이러한 태도국의 절박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는 불법 어업에 대응하는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이나 새마을운동 사업처럼 한국의 기술과 경험을 공유해 태도국 국민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들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 재활성화 분야에서는 한국이 강점을 갖는 디지털 분야 장관회의 등을 통해 연결성을 강화하고 한-태도국 간의 직항 노선 복항을 추진하거나 태도국 지역에 외교공관을 추가로 개설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 “표심 잡아라” 일회성 회의로 그쳐선 안 돼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의 부산 유치전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과 같은 굵직한 국제 선거전을 뛰고 있는 정부에 태도국은 면면이 ‘귀한 손님’이자 중요한 협력 파트너다. 태도국 14개국 가운데 12개 국가가 유엔의 정식 회원국으로, 아시아태평양그룹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또 11개 국가가 엑스포 관련 회원국이며 나머지 3곳도 가입을 추진하고 있어 정부가 집중 관리해야 할 ‘표밭’이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관건은 한국의 태도국을 향한 관심과 지원이 지속가능하게 유지될지다. 한국의 독자적 정상회의가 일회성에 그친다면 역내 사안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정례화된 외교 협의와 50여 개 사업 상황들을 점검해 나갈 플랫폼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현재 2000만 달러(약 265억 원) 규모인 태도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4∼5년에 걸쳐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에 2배 이상 증액시키고 PIF에 기부하는 협력기금도 획기적으로 증액할 계획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태도국은 한국으로부터 ‘한강의 기적’과 같은 개발 노하우 공유 등 실질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며 “한국의 소프트파워로 외교 지평을 넓히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신나리 정치부 기자 journari@donga.com
#태평양도서국#첫 정상회담#한강의 기적#맞춤형 청사진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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