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민족과 이집트 대통령[임용한의 전쟁사]〈243〉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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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 전복 후 이집트 초대 대통령이 된 모하메드 나기브의 어머니는 수단인이었다. 남수단은 지금도 우리나라 한빛부대가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어 있을 정도로 험악한 지역인데, 이 지역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이집트의 최정예 용병부대이거나 이집트를 위협하는 제일 무서운 전투 민족이었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아시리아의 전쟁 장면을 새긴 부조 중에는 아슈르바니팔 2세가 이집트의 멤피스를 공략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성벽 위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은 이집트인이 아니라 아프리카인이다. 당시 이집트의 통치자는 남수단 출신인 누비아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와 누비아는 수천 년간 애증의 관계였다. 나기브는 이런 애증 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랜 무인 가문 출신인 이집트군 장교였고, 어머니는 수단인이었다.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태어난 나기브는 수단 총독으로 재직하다가 수단인인 마디 반군에게 살해된 찰스 고든을 기념하는 고든기념대를 나오고, 이집트군 장교가 되었다.

1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군의 전투는 형편없었다. 이스라엘군은 이집트군의 문제는 유능한 장교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능한 장교가 이끈다면 이집트군도 달라질 수 있다. 그 실례를 보여준 사람이 나기브였다.

전쟁 영웅이 된 나기브는 쿠데타를 일으킨 가말 압델 나세르에게 옹립되어 대통령이 되었다가 나세르에게 제거된다. 이런 경력을 보면 우리는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나기브는 수단 입장에서 보면 이집트를 정복한 영웅인가, 배신자인가? 재미난 사실은 나세르도 조상을 따지고 올라가면 정통 이집트인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한 세대만 지나면 다민족 국가가 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단일민족 국가로 살아온 탓에 이런 이야기가 낯설고, 주변 국가를 선과 악으로 재단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국제 관계란 다양성과 역동성, 현실적 판단을 요구하는데, 우린 영원한 적과 영원한 친구로 분류하려고 한다. 이런 편견을 고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임용한 역사학자



#용병민족#이집트 대통령#다민족 국가#단일민족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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