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용석]격랑 속 반도체 산업, 활로 찾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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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구조 급변하는 시기
정부-기업 협업해 생존 모색해야

김용석 산업1부장
김용석 산업1부장
대만에서 반도체 산업은 ‘실리콘 실드’라고 불린다. 경제를 책임지는 것뿐 아니라 국가의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은 “만약 (양안)전쟁이 발생한다면 TSMC의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라고 했다. 대만을 공격한다면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무너지는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의미다.

그런 TSMC가 대만 안에서만 고집했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미국에서 시작하는 것은 산업구조의 큰 변화를 상징한다. TSMC는 3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와 4nm 최첨단 공정 반도체 생산을 미국에서 하기 위해 6일(현지 시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장비 반입식 행사를 열었다.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물론 애플 팀 쿡, 엔비디아 젠슨 황, AMD 리사 쑤 등 미국 테크기업 CEO들이 총출동해 축제 분위기를 냈다. 하지만 모리스 창은 이날 “이제 세계화 시대는 거의 끝났다. 다시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산업이 깊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반도체 산업 부침은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 사건이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 해당 국가 제조업 전반 부침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만 사례처럼 국가 안보와도 무관치 않다.

삼성전자도 격랑 위에 올라탄 형국이다. 반도체 사업 전반에서 여전히 중국 비중이 높아 전략적 선택에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TSMC를 따라잡기 위해 내놓은 3나노 반도체 파운드리 첫 고객사도 중국 코인 채굴 반도체 기업에 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찾아 미국산 장비로 채워진 최첨단 라인을 방문했을 때 한 전문가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바이든과 동등한 대접을 요구하며 같은 장소를 방문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 대립이 만들어낸 탈세계화가 결국 우리에겐 경쟁자인 두 나라 반도체 기업에 성장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SK하이닉스의 고민도 깊다. 과거 사례를 보면 침체와 호황을 거듭하는 메모리반도체 사이클 속에서 선제적인 투자를 하지 못한 여러 기업들이 무대 아래로 퇴장해 왔다. 호황기 시장 확대 기회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진 탓에 결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증유 경제위기 속에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현장 모습은 구호와 다르다. 반도체 투자에 세금 부담을 덜어주자는 법안은 국회 문턱에 걸렸고, 반도체 공장에 물을 공급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대만 정부와 ‘원팀’을 이룬 TSMC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삼성은 TSMC와 싸우는 게 아니라 ‘대만 전체’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중소기업 중심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던 대만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현지 기업인들로부터 “삼성, LG 같은 대기업을 가진 한국이 부럽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이후 10여 년 동안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대기업을 견제하는 사이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을 키워낸 대만은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 추월을 앞두고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10년 뒤에는 또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상상하면 답답해진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반도체#삼성전자#sk하이닉스#대만#t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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