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후진타오의 퇴장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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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후진타오(80)와 시진핑(69)의 권력 이양은 이례적으로 순조로웠다. 후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원로정치 타파” 를 명분으로 전임자가 몇 년간 군권을 갖는 전례를 깨고 당과 군의 권력을 한꺼번에 물려줬다. 후임자 시 주석은 “ 고풍량절(高風亮節· 고상한 품격과 굳은 절개)을 보여줬다” 는 극찬으로 화답했다. 두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던 둘은10년 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색한 장면을 노출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22일 폐막한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단연 눈길을 끈 장면은 후 전 주석이 폐막식 도중 화난 표정을 짓다가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 퇴장하는 모습이다. 외신이 공개한 사진과 영상에는 그가 책상 위에 있는 파일을 열어보려다 시 주석의 최측근에게 제지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측근은 파일을 빼앗다시피 했고 후 전 주석이 화내자 시 주석의 지시를 받은 수행원이 그를 끌어내는 듯한 장면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건강상 이유’라고 했지만 “후 전 주석을 자극해 끌려나가는 모습을 연출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후 전 주석은 고위급 원로들 중 이례적으로 이번 당대회에 참석했다. 당 3대 파벌인 ‘상하이방’의 거두 장쩌민 전 주석과 주룽지 전 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시주석의 종신집권을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시 주석의 상하이방 척결 후 장 전 주석은 ‘반(反)시진핑’으로 돌아섰고, 주 전 총리도 올 3월 시 주석의 3연임에 제동을 거는 당 원로들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는 미국 언론 보도가 나왔다.

▷시 주석에 대한 공개 발언을 자제한 덕분인지 후 전 주석은 당대회에 초대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수모만 당한 셈이 됐다. 개혁·개방의 실용주의자였던 그의 퇴장은 시 주석의 중국이 정반대 길을 가게 될 것이며 이를 견제할 세력은 모두 제거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리틀 후’ 로 불렸던 최측근 후춘화 부총리는 정치국 위원 24명에도 들지 못했다. 리커창 총리와 왕양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도 중앙위원 205명을 뽑는 선거에서 탈락했다.

▷시 주석의 측근 그룹인 ‘시자쥔(習家軍)’이 이번에 상무위원 서열 2∼7위를 싹쓸이하면서 집단지도체제를 1인 독재체제로 바꿔놓았다. 모두 10대 시절 문화혁명을 겪으며 홍위병에 ‘가스라이팅’ 당해 뼛속까지 공산당원인 사람들이다. ‘대약진운동’이나 문화혁명 같은 광신적 정책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대 세력을 모조리 몰아내고 전면에 나선 만큼 실패의 책임도 더 크게 돌아올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후진타오#퇴장#원로정치 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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