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도 ‘앵콜’이 될까요?[동아광장/김금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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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아닌 군중이 보고 싶어 찾아간 축제
팬데믹 고립과 공포 이겨낸 해방 자리 같아
일상 소중함 깨달은 우리, 간절히 지켜내야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지난 토요일에 열렸다. 매체에서 들었을 때만 해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당일이 되자 마음이 달라졌다. 인파가 너무 많아 한번 휩쓸리면 오도 가도 못하고 휴대전화도 안 터진다는 글을 보고는 처음에는 큰 고생을 하겠구나 싶었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모인 광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평소 내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여행을 가도 되도록 사람들이 많은 관광지는 피하고 친구도 여럿보다는 단둘이 만나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편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보낸 시간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기도 했다. 팬데믹 기간 내내 사실상 군중이라고 부를 만큼의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정말 우리가 그렇게 모일 수 있는지, 같은 공간에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를 느끼고 싶었다. 불꽃보다는 사람이 보고 싶어서 집을 나선 것이다. 집에서 나와 역 쪽으로 걷자 꽤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사전에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나선 길이라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까지 가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도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지 헷갈렸는데 막상 나오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돗자리를 든 사람들이, 추울까 봐 단단히 패딩을 챙겨 입은 사람들이, 서로 손을 꼭 잡고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포대교 근처까지 간 나는 아무래도 다리 쪽은 너무 붐비겠다 싶어 한강공원 쪽으로 내려갔다. 평소에는 뛰노는 몇 명의 아이들과 ‘따릉이’ 자전거들만 자리해 있던 놀이터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간이의자와 돗자리를 준비해 모여 앉은 아이와 어른들이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쁜 일과를 보내다 보면 한 번 쳐다보지도 못한 채 지나가는 밤하늘이지만 그날은 미리 자리까지 잡아 바라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찰과 안전요원이 안내하는 대로 공원 쪽으로 내려갔고 길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불꽃을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펑 하면서 첫 번째 불꽃이 터졌다. 주변에서는 감탄보다는 아, 하는 아쉬움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렸는데 강변북로가 머리 위로 지나는 곳이라 풍경을 상당히 가렸기 때문이었다.

안 되겠다 싶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재빨리 떠났지만 그냥 그 자리에 남은 이들도 많았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가 애써 자리 잡은 이 ‘포인트’에서 가능한 만큼 누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버드나무 불꽃이 서울 밤하늘에 떴던 1부 순서가 끝나고 이게 다인가 싶어 휴대전화로 정보를 찾으려는데, 경험자들의 경고대로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당황해하는 내게 주변 사람들이 한 시간 넘게 불꽃이 이어진다고, 이제 하나가 끝났고 5분 정도 쉰다고 알려주었다. 자전거를 밀고 지나가며 이제 어느 나라의 불꽃이 시작되는지를 소리쳐 안내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난간에 붙어 서는 아이를 위험하다며 얼른 떼어놓는 할머니도 있었고 바람에 날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누군가의 스카프를 주워 건네는 청년도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이웃들의 모습이었다.

“승객들 보라고 버스도 천천히 가네.”

남편이 머리 위를 지나고 있는 버스 한 대를 가리켰다. 지금 이 순간 버스에 타 있는 사람들이 이 우연한 행운에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을지를 상상하자 내 마음도 들떴다. 코로나 기간 우리가 감당해야 했던 고립과 공포, 당혹감과 무기력을 생각하면 이렇게 사람들이 모인 지금은 해방과도 같았다.

이윽고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한국의 불꽃들이 시작되자 뒤편에 돗자리를 깔고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이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행사가 이어지는 내내 아이들은 박수와 함성을 보냈고 끝나고 나서는 ‘앵콜(앙코르)’, ‘앵콜’ 하면서 한 번 더 불꽃이 터지기를 열심히 기원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천진함에 웃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면서는 그 말의 무게가 한발 한발 감기는 듯했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이 많은 기쁨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으며 때론 예기치 않게 중단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깨달았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사람 사는 것처럼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것이 저절로 주어지지 않고 서로에 대한 끝없는 독려 속에 얼마나 간절히 지켜내는 것인지를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삶은 찰나적인 것이 아니라 별빛처럼 계속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어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불꽃축제의 밤 아이들이 ‘앵콜’을 외쳐주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동아광장#김금희#서울세계불꽃축제#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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