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파고드는 마약, 성폭력 강도 살인 강력범죄 온상 된다”[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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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선 성균관대 석좌교수·前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하루가 멀다 하고 마약 투약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과거 일부 부유층과 연예인의 일탈로 여겨지던 마약이 직장인 학생 주부 등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했다. ‘마약의 일상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 하수처리장 27곳에서 잔류 마약류의 종류와 양을 분석했더니, 한 곳도 빠짐없이 필로폰(메트암페타민)이 검출됐다. 엑스터시(MDMA)는 21곳에서 검출됐다. 농도로 추정한 마약 사용량은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지만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6일 마약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를 만나 우리나라의 마약 실태와 대책을 물었다.》

6일 만난 정희선 성균관대 석좌교수(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는 양귀비꽃을 상징하는 브로치를 달고 있었다.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불법인 줄 모르고 재배하는 경우가 많아 경각심을 높이려고 늘 착용한다고 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6일 만난 정희선 성균관대 석좌교수(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는 양귀비꽃을 상징하는 브로치를 달고 있었다.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불법인 줄 모르고 재배하는 경우가 많아 경각심을 높이려고 늘 착용한다고 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우리나라 마약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가.

“유엔은 마약 사범이 인구 10만 명당 20명을 넘으면 급격한 확산 위험이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2015년 이를 넘어섰다. 그해부터 단속된 마약류 사범이 정확히 1만 명을 넘었고 매년 급증해 지난해 1만6000여 명에 달했다. 최근 마약 사건을 보면 두 가지 점에서 심각하다. 첫째, 젊은 마약 중독자가 많아지고 있다. 다크웹을 통해 마약을 사고 비트코인으로 지불한다.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세대일수록 마약에 접근하기 쉽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 사범 중 35%가량이 10, 20대이다. 30대를 포함하면 60%에 달한다. 특히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류 사범이 450명인데 이는 5년 새 3.8배가 늘어난 것이다. 둘째, 상습 투약자가 늘고 있다. 최근 검거된 돈 스파이크의 차에서 필로폰이 30g 발견됐다. 1회 용량이 쌀 한 톨만큼인 30mg 정도라 1000명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많은 양을 구해 싣고 다니는 것도 놀랍고, 평소 상습적으로 투약해 왔음을 보여준다.”

―마약이 급속히 퍼지게 된 이유가 있나.

정교수는 마약은 환각과 정신질환을 일으켜 엄청난 육체적 고통이 찾아와 최선의 대책은 예방이라고 강조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디지털화, 글로벌화의 영향이 크다. 다크웹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개인이 소량으로 사는 게 가능해졌다. 집 앞에 택배로 마약을 배달해 준다. 외국으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소량의 마약은 세관이 일일이 걸러내기 어렵다. 국내에서 유학·취업하는 외국인이 많아졌고, 그 반대로 외국에 유학·취업하는 한국인이 많아진 것도 원인이다. 나라마다 마약류로 지정된 것이 다르기 때문에 왕래하면서 들여오곤 한다. 미국, 캐나다에서 합법화된 대마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은 어떤 종류인가.

“현재 우리나라 마약류는 △마약(146종) △향정신성의약품(291종) △대마(3종) △임시마약(97종)으로 규정돼 있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은 습관성, 중독성이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마약 사범이 향정신성의약품에 속하는 필로폰에 70% 집중돼 있다. 각성 효과가 있어서 과거에는 집중력을 높이거나 잠을 안 자야 하는 경우에 약으로 쓰인 적이 있다. 이른바 2019년 ‘버닝썬’ 사건에서 성범죄에 이용된 물뽕(GHB)도, 강력한 환각 작용이 나타나는 LSD도 향정신성의약품에 속한다. 2017년 멀쩡하던 고3 학생이 이모와 어머니가 스파이로 보인다며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다. 미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 50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아주 소량의 LSD를 복용했을 뿐인데 가족을 살해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신종 마약이 얼마나 자주 생겨나나.


“아직까지 신종 마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하지만 종류가 많고 화학구조를 살짝 바꾸고 바꾸고 해서 변종이 계속 나온다. 유엔에 보고된 신종 마약이 무려 1145종이다. 1971년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에 관한 단일협약으로 규제된 물질이 200여 종이었고, 50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가 근래 들어 5배가 넘게 늘어났다. 이를 관리하는 법적인 틀은 마련돼 있다. 어떤 약물을 임시 마약으로 정한 뒤 3년 동안 남용 여부를 살펴본 뒤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해 관리 체계에 편입시킨다. 다만 매년 신종 마약 수십 개가 등장하고 수십 개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 속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불법 합성·제조되므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미국에선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중독으로 5분마다 1명씩 사망한다. 펜타닐은 비슷한 구조의 유사체가 40가지나 된다. 그러다 보니 변종 펜타닐이 쉽게 제조돼 빠르게 유통된다. 순도도 일정치 않아 부작용이 크다. 특히 다른 약물과 섞일 경우 낮은 농도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어 ‘죽음의 약물’이라고 불린다.”

―사회 전반적으로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진 것 같다.

“마약 범죄는 제조, 유통, 소지와 사용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마약 범죄의 80%는 마약 소지나 사용이다.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아예 시도할 생각을 못 하게 해야 한다. 마약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마약김밥’ ‘마약떡볶이’를 전수 조사해야 한다. 최근 구속된 돈 스파이크는 ‘마약스테이크’를 팔았다. 마약 성분이 나오면 판매를 금지하고, 안 나오면 이름을 못 쓰게 해야 한다. 마약에 얼마나 관대해졌으면 맛있는 음식과 연결될까 싶다. 더욱이 이런 간판은 어린이,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마약이 주는 순간의 쾌락이 지나가면 시공간 개념을 잃고 환각에 시달린다.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금단 증상으로 엄청난 육체적 고통이 찾아온다. 최선의 대책은 예방이다.”

―마약 중독은 자신을 파괴할 뿐,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마약이 유도하는 범죄가 심각하다. 최근 골프장에서 마약 음료를 먹인 뒤 내기 골프를 치고 돈을 뺏거나, 마약에 취해 환각 상태에서 강도나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많이 발생했다.”

―현재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국제과학수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 마약 검사 수준은 어떠한가.

“UNODC는 특정 마약을 전 세계 300개 실험실에 보내고 테스트 결과를 수집한다. 그 결과를 보고 검사를 잘하는 나라가 못하는 나라에 분석기술을 알려주는 식으로 각국의 검사 역량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한다. UNODC 국제과학수사 자문위원은 각국 마약 실험실이 검사 역량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980년대 후반 소변으로 마약을 검출하는 검사법을 개발했다. 불과 15년도 지나지 않은 2001년에 마약 검사의 기준이 되는 국제 기준 실험실로 정해졌다. 1ng(나노그램·1ng은 10억분의 1g) 단위의 신종 마약까지 잡아낸다. 국과수 인적 파워는 최고다.”

―최고 수준의 검사 역량이 마약 수사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

정희선 석좌교수는 현장과 학계에서 마약 연구에 평생을 바친 국내 손꼽히는 전문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경찰청 의뢰를 받아 일반 국민용과 경찰용으로 마약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버닝썬’ 사건이 계기였다. 일반인이 음료에 마약을 탔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가방에 부착 가능한 스티커형 진단키트를 만들었다. 현장 출동한 경찰이 증거를 확보하기 쉽게 리트머스형 진단키트도 개발하고 있다. 곧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일반인이 진단키트를 이용하면 마약 범죄에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약 사범 검거 외에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국내 유통되는 마약을 모니터링하는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은 경찰 세관 대검찰청 국과수 식품의약품안전처 병원 등에 정보가 흩어져 있다. 각 기관이 정보를 공유하고 실시간으로 전파하게 해야 한다. 조기경보 시스템을 통해 마약 유통을 막을 수 있고 남용 정도를 판단해 법적 규제를 할 수 있다. 그다음은 담배나 술처럼 중독 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마약 사범의 출소 3년 이내 재복역률(40%)은 일반 형사 사범 재복역률의 2배에 달한다. 마약 사범의 치료·재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약 중독을 범죄로 보느냐, 질병으로 보느냐에 따라 나라마다 정책이 다르지만 우리나라는 마약 사범의 처벌에만 집중돼 있다. 사실 마약 사범이 한 명 나오면 집이 망한다고 한다. 치료할 병원도 없고 취직도 안 된다. 전국에 운영되는 마약 중독 치료 병상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고, 지정병원인데도 환자를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마약 투약 연령이 낮아지고 있어 치료와 재활이 더욱 중요해졌다.”

정희선 성균관대 석좌교수·前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197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들어가 약독물과장, 마약분석과장, 법과학부장을 거쳐 11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을 지냈다.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원장으로 부임했다. 2014년 아시아인, 여성 최초로 국제법독성학회(TIAFT) 13대 회장에 당선됐고 현재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국제과학수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국제법독성학회가 이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사람에게 수여하는 앨런 커리상(Alan Curry Award)을 수상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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