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배극인]반도체 한국, 흔들리는 초격차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세계 1위 되찾고도 기대보다 걱정
반도체 강국 육성, 말보다 실천으로

배극인 논설위원
배극인 논설위원
삼성전자가 매출 규모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처음 제패한 것은 2017년이었다. 메모리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24년간 ‘왕좌’를 지킨 인텔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이 같은 순위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기업의 생산량 확대가 문제였다. 전망대로 삼성전자는 2년 만에 왕좌를 반납했다. 하지만 인텔이 다시 찾은 반도체 천하도 잠시였다. 인텔은 지난해 3년 만에 다시 삼성전자에 세계 1위 자리를 내놓았다.

지금 인텔의 처지는 과거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우리가 쓰는 상업용 컴퓨터 시대를 열고 반도체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주인공이 인텔이다.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내놓은 고든 무어가 공동 창업자다. 한때 ‘외계인을 고문해서 얻은 기술로 반도체를 만든다’는 말까지 들었던 회사다. 1990년대에는 ‘인텔 인사이드’ 신화로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인텔은 미국 실리콘밸리 그 자체였다.

제국의 몰락은 한순간이었다. 2013년 취임한 새 CEO가 원가 절감과 단기 성과에 매달리며 연구 인력을 대규모로 해고했다. 이후 인텔은 시대의 변화에 낙오했다. 어느새 구식이 된 인텔의 CPU 공정은 우려먹는 ‘사골 국물’로 놀림받았다. 퀄컴이 스마트폰용 CPU를 개발하면서 ‘CPU=인텔’ 공식도 깨졌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기존 고객들까지 자체 CPU 개발에 나섰고, 인텔 제국은 와해됐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삼성전자도 지금 기대보다 아슬아슬하게 보는 시각이 더 많다. 세계시장을 석권한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선 후발주자와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세계 최초’ 타이틀도 잇달아 마이크론 등 추격자에 넘겨주고 있다. 차세대 산업으로 명운을 건 비메모리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는 수율 문제로 고전 중이다. 급기야 퀄컴은 삼성전자에 맡겼던 파운드리 물량을 대만 TSMC에 나눠 맡겼다. 차세대 제품은 전량 TSMC에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등 다른 고객사도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주가는 신저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한때 7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조차 포기했던 인텔까지 치고 올라오고 있다. 지난주 미 오리건주에 30억 달러를 투입해 만든 연구공장을 공개했다. 애리조나, 오하이오, 독일에는 800억 달러를 투자해 새 공장을 짓고 있다. 미 정치권도 전방위 지원에 나섰다. 하원은 올 들어 반도체 연구와 제조에 520억 달러,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450억 달러를 지원하는 경쟁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은 지난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기술 개발과 육성에 25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미국혁신경쟁법’을 통과시켰다.

작년 한국 반도체 수출은 1280억 달러로 총 수출의 20%였다. 반도체 설비투자는 55조4000억 원으로 제조업의 절반 이상이었다. 반도체산업이 낙오하면 나라가 휘청거릴 수준이다. 지난해 국가 차원의 글로벌 반도체 대전이 벌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 평택단지를 방문해 “반도체 강국을 위해 기업과 일심동체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올 초 제정된 반도체특별법은 업계가 요청한 규제 완화 항목을 대부분 빼놓은 맹탕이었다. 다음 달 출범할 새 정부도 대대적인 반도체산업 육성책을 약속하고 있다. 이번에도 관건은 실천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남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



#반도체#세계 1위#반도체 강국 육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