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미경]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에 없는 3가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6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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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워터게이트 스캔들 특종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든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기자. 9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베테랑 기자이지만 대통령 기자회견장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신조는 이렇습니다. “정책과 정치에 관한 큰 질문에 답을 얻으려면 밖에서 안을 봐야 한다.” 백악관이라는 통제된 환경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은 화려하지만 먹을 게 없는 밥상 같다는 명언입니다.


‘얼빠진 아이디어’에서 빅 이벤트로 진화

우드워드 기자니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기자회견이 아니더라도 그는 정책과 정치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그가 인터뷰하자고 하면 대통령들은 대환영입니다. 언론에 적대적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우드워드 기자에게는 수십 시간을 내주며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미국은 정치에 관심 많은 나라가 아니지만, 대통령 기자회견은 예외입니다. 전 국민의 관심을 끄는 빅 이벤트입니다. 대화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기자회견 하는 대통령과 친밀한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과 국민이 “사랑을 나눈다”라고 비유한 전문가도 있습니다. 기자회견이 미드, 리얼리티 예능 시청률을 누르는 것은 예사입니다.

생방송 기자회견 전통을 세운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입니다. 처음에 기자들은 반대했습니다. 대통령이 말실수라도 하면 국제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냉전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 명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훌라후프 이후로 가장 얼빠진 아이디어다.”

케네디 행정부는 기자들에게 ‘3무(無)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무각본(unscripted)’, ‘무검열(unscreened)’, ‘무할당(unallotted)’. 각본 없이 진행하고 기자의 질문을 검열하지 않으며 주제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 속에서 1961년 1월 25일 열린 첫 기자회견은 이보다 닷새 전에 열린 케네디 취임 연설만큼이나 미국인들의 기억에 깊게 새겨진 날입니다.

37분 동안 32개의 질의응답이 오갔습니다. 핵무기 감축, 쿠바 수교, 우주 개척에서부터 정부 예산, 무료 급식, 지역 정치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뤘습니다. 같은 주제의 질문이 연달아 나온 적은 없습니다. 대신 기자들은 여러 주제 사이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했습니다. 아까 다룬 주제라도 부족하다면 나중에 각도를 바꿔 다시 물었습니다.

성공적인 기자회견은 4대 능력에 좌우됩니다. ‘팩트 장악력’ ‘빠른 정리력’ ‘매끄러운 전달력’ ‘한 꼬집 유머력’. 케네디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을 갖춘 리더입니다. 하지만 타고난 명연설가라고 자만하지 않고, 언제나 브리핑북을 끼고 다니며 열공하고 스피치라이터와 함께 국민을 설득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질의응답이 오갔지만 수박 겉핥기식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은 이유입니다. 재임 동안 총 64번의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16일에 한 번꼴입니다. 그만큼 케네디 정부는 투명하게 운영됐다는 증거입니다.


케네디부터 오바마까지 기자회견의 달인들

이후 대통령들도 3무 원칙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각본이 없으니 예기치 않은 드라마가 자주 펼쳐집니다. ‘거침없는(feisty)’, ‘열띤(heated)’은 한국에서는 실종됐지만,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을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라며 준비 덜 된 질문을 던진 기자를 혼낸 사례는 유명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말실수가 잦다는 약점이 있지만 강점도 있습니다. 권위적이지 않고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출 줄 압니다. ‘애버리지 조’(평범한 조)의 기자회견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mickey@donga.com



#미국#대통령#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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