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와 드뷔시가 전하는 ‘영원한 봄’[미술과 음악의 하모니/윤지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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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의 ‘봄’.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윤지원 큐레이터·첼리스트
윤지원 큐레이터·첼리스트
거리마다 핀 꽃들이 봄의 시작을 알린다. 만개한 꽃이 찰나의 순간에 지는 걸 생각하니 벌써 아쉽다. 봄의 절정을 유리병에 담아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마음을 달래주듯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는 봄기운을 가득 담은 작품 ‘봄(Primavera)’을 제작했다.

1482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대표적인 르네상스 시대 걸작으로 꼽힌다. 피렌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메디치 가문의 의뢰로 그려졌다. 그림 속에는 고대 신화 속 인물이 대거 등장한다. 신화를 그린 만큼 작품에는 다양한 해석이 따라붙는데, 개인적으로 작품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와 닿는다.

가장 오른쪽부터 보자. 봄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바람을 불며 나타난다. 그러자 나무에 꽃과 열매가 맺힌다. 제피로스와 맞닿은 클로리스는 꽃의 신 플로라로 변해 꽃씨를 흩뿌린다. 이어서 따뜻한 봄바람이 더운 듯 웃옷을 벗은 풍요의 여신 비너스에 의해 꽃이 만개한다. 4월은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비너스의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너스 머리 위로 큐피드가 노닐고, 그 왼편에는 봄의 절정을 기뻐하며 춤을 추는 삼미신이 보인다. 끝으로 헤르메스가 꽃잎이 떨어지지 않게 먹구름을 막고 서 있다.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그림 속 봄에 푹 빠져든다.

보티첼리가 눈으로 감각하는 봄을 그려냈다면 약 300년 후에 태어난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는 음악으로 대신했다. 드뷔시는 1884년에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예술상 로마대상을 받아 부상으로 메디치 빌라에서 거주하며 로마에서 유학할 기회를 얻게 된다. 드뷔시는 로마에서 보티첼리의 ‘봄’을 접하고, 1887년 2월 교향적 모음곡 ‘봄’을 작곡했다.

드뷔시는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창조의 고통과 개화의 기쁨을 두 개의 악장으로 표현했다. 특히 1악장은 마치 보티첼리의 ‘봄’에 나타난 이야기를 음악으로 듣는 듯하다. 도입부의 플루트 소리는 입김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제피로스를 연상시킨다. 중반부로 갈수록 넓어지는 화성은 비너스의 등장을 알리며 만개하는 꽃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러고는 꽃향기 같은 여운을 남기며 소리가 조용히 사라진다. 2악장에서는 폭발적으로 탄생하는 생명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전해진다.

이렇듯 예술가들은 변화하는 계절의 감흥을 작품으로 영원히 잡아 놓았다. 이 덕분에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봄을 하나씩 품고 있는 셈이다. 꽃향기가 그리워질 때쯤, 혹은 지금 꽃을 보기 위해 떠날 수 없다면 예술가들이 선사한 봄을 꺼내어 보면 어떨까? 보티첼리와 드뷔시의 작품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와 닿는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이 교감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윤지원 큐레이터·첼리스트
#보티첼리#드뷔시#영원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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