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12〉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1-09-11 03:00수정 2021-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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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본다

이성복(1952∼)





대학에서 강의하는 중에 천재 작곡가라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절대음감에 청음력도 뛰어나다고 들었다. 한동안 그가 작곡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꿈을 꾸고 났는데,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걸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이 곡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말하던 어린 작곡가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작곡가는 꿈을 꾸고 곡을 쓰기도 하는구나. 신기했는데 생각해보니 시인도 비슷하다. 꿈을 꾸고 나서 바로 시로 옮기려고 했는데 펜과 종이가 없어 잊었다고, 이후로는 머리맡에 늘 메모지를 챙긴다는 시인을 나는 알고 있다.

진짜 꾸는 꿈만 시가 될까. 시인은 눈을 뜬 채로도 꿈과 비슷한 현실의 느낌을 포착할 수 있다. 그 예로 이성복의 ‘음악’을 소개한다. 이 시는 꿈속 같은 현실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비 오는 날, 차 안에 있으면 세상과 고립되었다는 고즈넉함에 휩싸이게 된다. 비 때문에 유리창 너머 보이는 세상은 다른 때와 좀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이럴 때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에 떨어진 듯 좀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아늑한 고립감 안에서 시인은 음악을 듣고 있다. 어쩐지 저 아름다운 음악이 진짜 세계인 듯하고, 나는 잠시 이상한 나라에 온 것만 같다. 이런 느낌은 찰나에 스치고 지나가지만 강렬하다. 비와 음악이 내 정신을 흔들어 진짜 나를 끄집어냈다는 생각도 든다. 원래 음악은 명확하게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이 시의 느낌도 그렇다. 그렇지만 분명 마음에는 오래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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