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크린, 더 깊은 감정[클래식의 품격/노혜진의 엔딩 크레디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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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모리코네 작곡의 오리지널 주제가만 들어도 세피아 톤의 향수에 젖어 들게 하는 추억의 명화가 있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시네마 천국’(1988년·사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똘똘하고 장난기 많은 꼬맹이 토토는 동네 영화관 ‘시네마 천국’을 드나들며 영사 기사 알프레도에게 영화를 트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당시 불이 잘 붙기로 악명 높은 니트레이트 필름을 사용하던 때, 알프레도는 영사실이 위험하다며 매번 내쫓는데 토토는 끈질기게 돌아와서 어깨 너머로 영사기술을 배우게 된다.

온 동네 남녀노소가 영화를 보러 와서 울고 웃고, 연애도 하고, 장난도 치고, 수면까지 취하는 이곳에서 마을 신부는 미리미리 영화를 보면서 키스 신은 다 제거하라고 시킨다. 알프레도가 이런 장면들이 담긴 필름을 가위로 잘라내면 바닥에 버려진 필름 조각을 토토가 모아서 갖고 가기도 한다.

그런데 인기 작품으로 영화관이 만석이던 날, 안에 못 들어가서 안달이 난 관객들을 위해 알프레도가 광장에서 즉석 야외 상영을 해주다 그만 화재가 난다. 전쟁 폭격의 트라우마가 아직 가시지 않은 마을 사람들은 불타는 영화관을 벗어나 도망치고 당황하는 가운데, 꼬맹이 토토가 영사실로 뛰어 들어가 거구의 알프레도를 계단 밑에까지 가까스로 끌어낸다.

살아나오기는 했으나 실명한 알프레도 대신 토토가 ‘시네마 천국’의 영사 기사로 일하게 되는데 아저씨는 계속해서 전쟁 중 아버지를 잃은 이 꼬맹이의 든든한 멘토가 되어 준다. 청년이 된 토토는 전학 온 엘레나에게 첫사랑을 느끼고 어렵사리 구애하다 사귀게 되는데 은행장 아버지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다. 군대를 다녀온 뒤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토토는 알프레도의 권유로 고향을 떠나 더 넓은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 뒤, 30년이 지나고 나서야 유명 감독이 되어 돌아온다.

영화는 1989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1990년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과 1991년 영국 BAFTA 외국어영화상 및 남우주연상(알프레도 역의 필리프 누아레), 남우조연상(어린 토토 역의 살바토레 카시오), 각본상, 음악상 등을 수상했다. 1990년 한국에서 처음 개봉한 이후 작년을 포함해 몇 차례 재개봉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영화관을 다녀간 경우는 있어도, 영화관에서 감염이 확산된 사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영화관을 등지는 모습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총관객 수는 거의 74%나 급락했다. ‘시네마 천국’에는 영화관 경험의 매력이 담겨 있다. 실물보다 더 큰 인물들의 사랑과 이별과 액션과 드라마를 대형 화면에서 볼 수 있던 시절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노혜진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
#스크린#감정#엔니오 모리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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