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 좋은 것들에 관하여[공간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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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경복궁 옆 마을, 서울 종로구 서촌의 작은 집에 산다. 3층 집이라지만 한 층 면적이 7∼8평인 그야말로 작은 집이다. 나도 한때 아파트에 살았다. 욕심이 화를 불렀다. 3년 만에 1억 원이 오르니(지금의 상승 폭을 생각하면 귀여운 수준이지만) 돈에 눈이 멀어 아파트를 팔고 분양권을 사 새 아파트에 들어갔는데 이번엔 가격이 100만 원도 오르지 않았다. 하우스푸어라는 말이 무서워 팔아 버렸는데, 팔고나자마자 가련한 신세가 됐다. 2012년 얘기다.

그때 3억5000만 원에 판 아파트는 고공 행진을 계속해 지금은 11억 원이 넘는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 그만하자. 그렇게 한옥-빌라-한옥을 전전하다가 약 1년 전 이 집을 지었다. 사계절을 보냈고, 올해 두 번째 봄을 맞는다.

이 집에서 행복하다. 우선 안도감이 크다. 이 집이라도 짓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는가. 아파트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고 전세만 고집했더라면 치솟는 전셋값에 골머리를 앓을 뻔했다. 집 짓는 데 총 6억 원이 들었으니 생각보다 큰돈이 필요하지 않았고 집 짓고 나면 10년은 늙는다는 풍문이 흉흉했지만 지금 내 마음과 피부는 어느 때보다 좋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인생. 대충대충 체계 없는 집짓기가 횡행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집짓기는 정확하고 투명하다. 이런저런 소동은 필연적이지만 “다신 안 해!” 할 정도의 환멸은 아니다. 기초 공사가 진행될 때만 해도 “이렇게 작은 집에 어떻게 살아?” 하는 마음이었는데 살아보니 그리 작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한 번씩 “아, 큰 소파 하나 있었으면” 하고 잉여 공간을 꿈꾸지만 사무칠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단독의 시간’이라 좋다. 층간소음으로 예민해질 필요도 없고 주차장의 멋진 차들을 보며 부러워할 일도 없다. 이렇게 저렇게 엮이는 일 없이 그저 나로 살면 된다. 집을 짓게 되면 어떻게든 작은 나무 한두 그루 정도는 심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마당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볕을 쬐며 가만 멍을 때리고 있으면 저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충전이 되는 기분이다.

그리고 ‘단독의 풍경’.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한옥의 기와, 저 멀리 오래된 회화나무, 그리고 나만 아는 하늘이 알게 모르게 마음의 사막화를 막아준다고 믿는다. 집을 유지하는 번거로움보다 누리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 좋은 이야기만 썼지만 세상 이치가 어디 그런가. 해소되지 않는 아쉬움도 있고 ‘아, 어떻게 해야 하나’ 당최 답이 나오지 않는 난관도 있다. 어쩌면 당신의 마음까지 아프게 할 그늘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작은 집#경복궁#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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