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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구원의 소망을 옷에 담다[간호섭의 패션 談談]〈50〉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입력 2021-03-03 03:00업데이트 2021-03-0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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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패션
원뿔형 에냉을 쓴 마리아 포르티나리의 초상화. 한스 멤링.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고딕(Gothic)’의 어원은 동게르만 계통의 부족인 고트족에서 왔습니다. 어찌 보면 게르만인의 세련되지 못한 감성에 대한 은유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세 예술 중에서 고딕양식 건축이 손꼽히고 있으며, 이 새로운 양식은 뾰족한 아치(Arch·첨두·尖頭)를 활용하여 기존에 불가능했던 높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고딕양식은 12세기 후반∼15세기에 걸쳐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이는 당시 시대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혹한이 계속되어 많은 사람들이 굶주렸고, 흑사병이 창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시련을 종교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고 그 계시를 받는 곳은 바로 고딕양식의 성당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신의 은총과 빛, 구원 그리고 전통 같은 고딕정신의 가치를 담고 있는 성당은 하느님께 최대한 가까워야 했고 그러기에 높은 첨탑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을 담은 빛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만들었습니다.

고딕정신의 가치를 담고 있는 의상들은 길고 수직적인 미학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의 의상은 웨이스트라인이 뚜렷한 드레스 스타일이 되어 남녀의 성차가 처음으로 뚜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상보다도 신발과 모자에서는 고딕양식의 표현이 더욱 직접적이고 뚜렷합니다. 신발은 발목까지 오는 반부츠 정도의 길이에 앞이 긴 풀렌(Poulaine)를 신었습니다. 꼭 어릿광대가 신는 우스꽝스러운 신발이 고딕시대에는 그 시대의 양식을 잘 반영한 전형적인 신발이었습니다. 여성들은 드레스의 길이 때문에 신발의 앞부분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남성들은 상류층으로 갈수록 앞부분의 신발부리를 더 길고 뾰족하게 만들었습니다. 길이가 너무 길어 보행을 할 수 없을 때는 앞을 돌돌 말아 끈이나 체인 등으로 앞부리를 발목에 묶기도 했죠.

모자는 끝이 뾰쪽한 원뿔 형태에 딱딱한 재질로 만든 에냉(Hennin)을 썼습니다. 예전 동화책에서 착한 마법사가 쓰는 모자를 연상하신다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에냉 부인이 고안한 이 모자는 흡사 성당의 첨탑을 그대로 머리에 옮겨 놓은 듯합니다. 긴 베일을 늘어뜨리고 나비 모양, 원통형 등 다양한 모양의 에냉이 유행하였지만 고딕양식의 가치와 정신을 반영하는 데에는 큰 변함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성당을 벗어났을 때 신발과 모자를 통해 개인적으로 하느님과의 교감을 나누고 싶었던 염원이 아니었을까요.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와 전염병,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가 중세의 고딕시대에도 있었으나 결국 인류는 극복해냈습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때, 고딕 패션은 곧 구원의 소망이었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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