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관심’만으론 아동학대 못 막는다[동아 시론/정익중]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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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끔찍한 아동학대 반복
‘징계권’ 삭제 계기 양육문화 바꿔야
부모교육-아동보호기관 늘릴 필요
어떤 아이도 맞으면서 배울 건 없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동학대는 근절될 수 있을까. 잊어버릴 만하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언론은 열심히 보도했고, 온 국민은 분노했으며, 정부는 전수조사를 하고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금세 식어버린 관심으로 양육문화는 변하지 않았고 아동보호 인프라는 충분히 갖춰지지 못했다. 그 사이 지금도 매달 2, 3명의 아이가 아동학대로 사망하고 있다. 아이는 부모를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하는데 죽은 아이에게 부모는 제일 무섭고 두려운 상대였다. 집이 아닌 지옥을 살다간 아이들이 안쓰럽다.

지난달에는 ‘징계권’ 조항(제915조)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징계권 조항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오인되어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으로 이어지므로 이 조항을 삭제해 체벌 금지의 취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하지만 법 개정만으로는 변화가 쉽지 않다. 이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양육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부모가 되기는 쉽지만 ‘부모답기’는 어렵다고 한다. 자녀 양육이 쉽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육이 어렵다고 모든 보호자가 자녀에게 욕하거나 때리지는 않는다. 모든 아동학대는 체벌로부터 시작됐다. 체벌의 이유는 손쉽고 훈육 효과가 좋다고 오인하기 때문이다. 체벌하면 아이들이 신속하게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겁에 질린 것뿐이다. 무엇보다 체벌은 장기적인 변화를 담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에게 문제 해결 방법에 있어 대화가 아닌 폭력을 가르칠 뿐이다.

훈육을 목적으로 아이를 때릴 수 있다는 생각 자체도 반인권적이다. 1979년 스웨덴에서 처음 체벌을 금지한 이후 2020년 기준 전 세계 60개 국가에서 학교는 물론 집에서도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징계권 조항의 삭제로 이 대열에 동참한 것이다. 아직도 일부 성인들은 어렸을 때 많이 맞았기 때문에 바르게 성장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체벌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로서 건강하게 성장했을 뿐이다. 심하게 맞은 사람들 중에서는 건강하게 성장한 사람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훨씬 많다. 체벌을 포함한 학대는 모든 정신질환의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이고 심지어 신체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

훈육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훈육이라는 핑계로 자녀를 학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를 때리고 욕설로 혼내는 방식으로 훈육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런 부모들은 계도해야 한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왜 때려서라도 훈육하지 않느냐고 부모를 책망하는 문화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은 배워야 하지만 맞으면서 배워야 할 일은 없다. 심지어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어려움을 공감하고 격려하며 기다리다 보면 원래 상태로, 혹은 더 성숙한 자녀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래도 자녀 양육이 힘들다면 정부는 관련 인프라를 마련해 보호자가 상담이나 부모교육을 통해 올바른 양육 방법을 지도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동보호 인프라도 대대적으로 확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전국에 68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는 총 229개 지방자치단체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 때문에 아동보호전문기관 한 곳당 평균 3, 4개 정도의 시군구를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과중한 업무량과 열악한 처우, 가해자의 폭언과 신변 위협 등으로 상담원들의 이직률은 매우 높다. 2019년 이직률이 28.5%에 달하며, 평균 재직 기간이 2.8년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유사업종 근속연수의 절반도 되지 않는 현실이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정부 예산은 올해 285억 원으로 보건복지부 총예산의 0.03%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하루빨리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해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터지면 전 국민이 반짝 관심을 가지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처럼 학대 사건에 대해 무기력한 대응만 거듭한다면 아동학대는 무한 반복될 것이다. 공분과 동정만으로는 학대를 막을 수 없다. 양육문화가 바뀌고 실효성 있는 정부 대책이 마련되어야 아동학대 근절을 앞당겨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잘못된 문화와 맞서 싸우고, 반짝 관심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뀔 것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는 학대가 근절되지 않는, 또 다른 오늘이 반복될 뿐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동학대#징계권#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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