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治 허물고 人治가 득세한 세상[오늘과 내일/정연욱]

정연욱 논설위원 입력 2020-09-15 03:00수정 2020-09-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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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옹호하는 與, ‘내편’만 챙기는 패권화
노골적 이중 잣대로 국민적 신뢰 무너져
정연욱 논설위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침묵을 깨고 소셜미디어에서 아들 군 복무 시절 파문에 대해 “국민께 송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을 들여다보면 아들 문제로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억울하다는 항변에 가까웠다. 진솔한 사과문이라기보다는 수사 중인 검찰에 ‘알아서 잘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추 장관 측은 채널A 사건 수사와 관련해 수사 대상이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이니 공정성 훼손을 우려해 윤 총장을 수사지휘 라인에서 배제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추 장관 아들 사건의 수사팀은 추 장관 인사의 혜택을 입은 검사들로 채워졌다. 운동장은 이미 기울었고, 수사팀의 공정성은 기대할 수 없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사팀의 수사를 독려하고 있다. 수사팀의 수사 보고를 안 받겠다고 해도 사실상 ‘셀프 수사’나 마찬가지 아닌가.

추 장관은 야당 대표 시절인 2016년 10월 우병우 당시 대통령민정수석을 향해 “자신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자기가 지시하고 보고받는 셀프 수사를 했다”고 질타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우 전 수석의 아들 특혜 복무 의혹을 지목해 “권력자 아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에서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정당성이 없다”고 몰아붙였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상대방에 대해선 추상같고, 우리 편에겐 너무나 관대한 이중 잣대다.

대놓고 추 장관 엄호에 나선 여당 의원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한 친문 의원은 추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특혜 휴가 의혹을 처음 제기한 당직사병 실명까지 공개하면서 ‘단독범’ 운운했다. 이전 정권의 내부 비리를 고발한 공익제보자는 ‘의인’이라고 떠받들다가 자신들을 향한 비판엔 ‘범죄자’ 낙인을 찍었다. 어제 국회 대정부질문에선 여당 의원이 예정된 질문도 팽개친 채 추 장관 변호만 하다가 국회의장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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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낯 뜨거운 막가파식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권 4년 차 추 장관의 낙마는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의 신호탄일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우리 국민이 되찾고 지켜낸 민주공화국이기에 그 이름에서 가슴 뜨거움을 느낍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 1월 신년사에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1조 1항은 진보좌파 진영이 유난히 외쳤던 구호였다. 현 집권세력이 민주화의 적통(嫡統)임을 부각하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완성체가 되어야 한다. 공화주의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법치주의의 기반 위에서 자유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추 장관 아들 파문으로 여권이 강조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세력만 챙기고 보호하면 된다는 패권정치로 변질되고 있다. 결국 법치주의는 퇴색되고, 특정 세력에만 기운 인치(人治)주의가 득세한 형국이다. 민주공화국을 떠받드는 또 다른 한 축인 공화주의는 밑동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이미 편향성을 드러낸 검찰 수사팀이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국민들의 신뢰가 없다면 추 장관과 여권이 주문처럼 꺼내드는 검찰개혁의 순항도 기대할 순 없을 것이다. 대통령 권력과 176석 거여(巨與)의 힘으로 추 장관 파문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민심의 저류를 읽지 못하는 오만이다. 자칫하면 여권의 추 장관 결사옹위가 갈등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추미애 법무부 장관#추미애 아들 군 복무 시절 파문#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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