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덕분에’가 필요한 때[현장에서/김태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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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인천의 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폭염에 지친 한 의료진이 냉방기로 잠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인천=뉴시스
24일 오전 인천의 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폭염에 지친 한 의료진이 냉방기로 잠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인천=뉴시스
김태성 사회부 기자
김태성 사회부 기자
“아니, 왜 내가 검사 대상이라는 거야!”

낮 최고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간 25일 서울의 한 보건소 야외 선별진료소.

검사를 받으러 왔던 한 시민은 목소리에서부터 짜증이 묻어났다. 다리까지 내려오는 가운에 마스크와 페이스실드, 두꺼운 장갑까지 착용한 채 땀을 흘리던 직원들이 순간 모두 멈칫했다. 이 시민은 “가까운 보건소에서 검사 받으란 연락이 왔는데 납득할 수 없다”며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직원 몇몇이 하던 일을 멈추고 거듭 설명한 뒤에야 시민은 입을 꾹 다문 채 대기석에 앉았다. 그새 땀범벅이 된 보건소 관계자는 그제야 구석에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위보다도 사람 상대하는 일이 더 힘들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섭게 번지고 있다. 수도권 재확산이 시작된 뒤 확진자 발생은 12일째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 많은 시민이 위기의식을 느끼며 조심하고 있지만, 여전히 길거리에선 심심찮게 ‘턱스크’를 마주한다. 자신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그나마 경각심을 느낄 법한 보건소 인근에서도 이런 풍경은 자주 벌어진다. 이날도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보건소 앞을 지나는 이가 여럿이었다. 심지어 몇 m 떨어진 곳에서 마스크를 손에 쥔 채 담배를 피우는 남성도 있었다.

더 큰 걱정은 이제 방역 현장에서도 파열음이 나오고 있단 점이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와 경기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의 조사에선 코로나19 방역 인력 33.8%가 ‘번아웃’ 상태에 처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찰들도 마찬가지다. 15일 광복절 집회에 동원됐던 경찰 9536명이 전수 검사를 받는 등 행정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격리시설 이탈자나 자가 격리 위반자를 붙잡는 데 얼마나 많은 경찰이 동원됐는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집단 감염이 발생한 15일 서울 도심 집회는 열흘이 지난 지금도 참석자들의 코로나19 검사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일부는 연락마저 닿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경고를 보내도 자기 일이 아닌 양 외면한다면 이 난국은 타개할 수 없다.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써 달라”는 방역당국의 호소에선 시민들의 협조만이 마지막 동아줄이란 애절함까지 묻어난다.

상반기 국내에 충격적인 코로나19 위기가 닥쳤을 때 그걸 이겨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헌신만큼 소중했던 건 시민들의 빛나는 협력과 인내였다. 올해 초 자원해서 대구경북에 파견근무를 다녀왔던 공중보건의 유현호 씨(31)는 “무더운 날씨에 장기전이 되다 보니 지치는 시민들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지금은 잠깐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 그게 바로 시민의식이다.

김태성 사회부 기자 kts5710@donga.com

#선별진료소#코로나19#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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