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원순 사건 대충하면 수사권 커지는 경찰 위상 무너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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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해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것이며 현행 법령상 더 이상 수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은폐 방조 의혹과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서도 필요한 수사는 철저하게 계속할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김 후보자는 박 전 시장이 숨졌으므로 달리 방법이 없다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고소 사실이 유출되고 피해 호소를 묵살 은폐 방조한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사건의 실체가 먼저 규명돼야 한다.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난 사건이더라도 경찰이 수사에 나섰던 사례가 있다. 사건의 성격은 다르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결정이 불가피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경우 경찰은 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이춘재를 용의자로 특정한 뒤 진실 규명을 명분으로 내세워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이게 불과 10개월 전의 일이다.

앞으로의 경찰 수사가 박 전 시장의 사망을 이유로 유야무야될 거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현재 부산지방경찰청장 신분인 김 후보자는 자신이 지휘해온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이 3개월이 다 되도록 기소도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는 점부터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경찰청장으로 임명될 경우 김 후보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권한이 막강해지는 새로운 경찰 조직의 첫 총수가 된다. 수사종결권을 검찰로부터 넘겨받는 만큼 경찰도 수사 의지나 능력, 정치적 중립성에서 과거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김 후보자가 15만 경찰 총수로 발탁된 데에는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작용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집권 후반기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경찰 총수에 앉혀 정권의 안위를 꾀한 인사였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김 후보자 스스로 권력에 유불리함을 계산하며 좌고우면하지 말고 권력형 성범죄 근절을 위해 엄정한 자세로 박 전 시장 사건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경찰 수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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