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정우]연금 문제, 일하는 기간 늘려 해결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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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민연금 기금 고갈에 대한 경고음이 또 들려온다. 지난달 17일 제4차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등이 주최한 공청회 자리에서다. 위원회에 따르면 기금 고갈 시점은 당초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가량 앞당겨졌다. 재정 상황이 5년 전보다 악화되었다는 얘기다. 위원회는 더 내고 덜 받으며 더 늦게 받는 제도 개선안을 제시했다. 핵심은 적립기금을 튼튼히 쌓아두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립기금을 많이 쌓아 둘수록 국민연금은 더 안정적인 제도가 될 수 있을까.

어느 국가에 청년 4000만 명과 노인 1000만 명이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돼 30년 뒤 청년 2000만 명, 노인 2000만 명으로 인구구조가 바뀌었다. 청년이 부담해야 할 노인부양비는 4배로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도 A 씨는 국민연금에 가입해 30년 뒤 연금수급자가 됐다. 그러나 노인부양비가 크게 늘어 해당 연금은 재정 위기를 겪었다. 정부는 연금 삭감, 보험료 인상 등의 방법을 고민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어떤 방법도 국민 반발과 제도 불신을 회피할 수 없다. 반면 B 씨는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스스로 노후를 대비해 상당한 현금과 부동산을 보유했다. B 씨의 생활이 A 씨보다 나을까?

청년인구가 절반으로 줄고 노인인구가 2배로 증가하면 일차적으로 생산 하락과 소비 증가가 발생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다. B 씨는 현금자산의 가치가 물가인상으로 하락하게 된다. B 씨 소유 부동산 등 실물자산도 노후화로 가치가 하락할 확률이 높다. 고령사회에서 스스로 노후를 준비한 B 씨도 국민연금 급여 삭감으로 피해를 본 A 씨와 마찬가지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피해는 발생 경로만 차이를 보일 뿐이다.

고령화 시대에 막연히 적립기금만 늘리는 전략은 합리적인 정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고령화와 기금 적립은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령화 문제의 본질을 바르게 직시해야 한다. 본질은 단순히 사람들이 오래 살고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평균수명 연장으로 늘어난 시간이 고스란히 ‘일하지 않는 기간’으로만 포함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개인의 일생이나 사회 전체에서 볼 때 일하는 기간과 일하지 않는 기간의 시간적 균형이 점차 흐트러져 그만큼 사회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따라서 고령화의 문제는 고용과 일자리의 확대를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문제 발생의 원인과 진단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과연 국민연금은 기금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의 힘든 노후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제도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민연금#고령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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