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신유아]한국사 교육, 전근대史 소홀해선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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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아 인천대 역사교육과 교수
신유아 인천대 역사교육과 교수
새 역사 교육과정이 발표되자마자 ‘자유’라는 두 글자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제는 새롭지도 않은 이 논쟁으로부터 우리는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사실 ‘자유’가 들어가고 빠지고 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이유로 역사교육과정을 계속해서 바꾸고, 또 바꾸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새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정정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용어의 정정은 2015 교육과정을 연구진이 개발한 ‘원안’대로 돌리는 작업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굳이 교육과정의 전면 개정을 주장한 이유는 정작 따로 있었다. 바로 ‘근현대사’가 차지하는 비중 문제다.

과거 정권에서는 근현대사 비중의 축소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그 결과 최근까지 사용된 2009 교육과정에서는 단원수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가 50 대 50이 되었고, 폐기된 2015 교육과정에서는 60 대 40 정도가 되었다. 이번에 발표된 새 교육과정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학자들이 주장해 왔던 대로 25 대 75 정도로 근현대사가 전체 단원의 75%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상태대로라면 수능에 대비해 모든 학생이 공부할 한국사 교과서의 75%가 근현대사로 채워진다. 근대는 대개 개항기를 전후한 시기부터로 보는데, 식민지 시기와 분단, 6·25전쟁과 민족 간 갈등과 대결의 역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의 역사가 전근대 시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약 1850년에 이르는 우리 민족 공동의 역사는 1개 단원에 축약해서 넣고, 근현대 시기의 역사만 4분의 3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전근대 시기의 역사는 시간적으로도 근현대와 비할 수 없을 만큼 장기간이고 내용적으로도 매우 방대하다. 이것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수준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공부하도록 하는 문제도 생각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근현대사가 현재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다른 선진국들이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타당한 생각일 수 있겠지만 필자가 15년간 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쳐본 결과는 조금 다르다.

학생들에게 근현대 시기는 더욱 공부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가 촘촘히 붙어 있다 보니 사건의 발생연도뿐만 아니라 월, 일까지 기억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유럽의 경우에는 전근대 시기의 역사가 국가사보다는 유럽 전체사로서 전개된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국민국가의 시작 시기인 19세기 이후 역사를 위주로 가르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면도 있다.

근현대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근현대사 위주로 내용을 구성하다 보면 자칫 역사 교과서의 정치도구화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 우려도 있다. 근현대사가 전근대사에 비해 매우 많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민족 화합과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이 시기에 우리 민족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번영해온 전근대 시기 역사도 지나치게 소홀하게 다루지는 말았으면 한다.
 
신유아 인천대 역사교육과 교수
#역사 교육과정#자유#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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