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10>심플하게 살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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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해서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말 가운데 한마디이지만 또 한 번 이 말을 큰 소리로 외쳐 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노라.’

―장욱진, ‘강가의 아틀리에’》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으로 일을 시작한 이후 내 삶의 상당 부분은 화가 장욱진과 연결되었다. 전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기리는 일은 즐겁고 보람차다. 매일같이 좋아하는 장욱진의 그림을 보고, 관련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

그러나 가끔 장욱진이란 이름의 무게와 그의 삶,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일들이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다. 고민이 깊어지고 결정을 내리기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다. 그처럼 혜안을 찾기 어려울 때 해답을 주는 것이 장욱진의 ‘나는 심플하다’란 말이다.

어떤 일을 심플하게 마무리하고, 일상을 심플하게 유지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욕심이 생기고, 꾸밈과 허세가 매 순간 빈틈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장욱진의 ‘심플하다’를 떠올리면 일상이 간결해진다. 욕심이 누그러지니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그러다 보면 처음 우려했던 일들은 오히려 좋은 성과로 이어진다.

‘화가에게 문장은 있을 수 없다.’ ‘화가의 존재방식은 오직 그림으로 표현될 뿐이다.’

장욱진의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 초판(1976년)과 재판(1987년) 서문에 적힌 글이다. 화가의 본분을 강조한 말로 유난히 마음에 남는 문장이다. 출간된 후 꾸준히 읽히고 있는 ‘강가의 아틀리에’는 장욱진이 만 12년(1963∼1975년)을 보낸 남양주 덕소에서의 삶이 바탕을 이룬다. 홀로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을 진솔하게 토로한 그의 글은 가장으로서, 화가로서, 스승으로서 일평생 일관된 삶을 지향한 흔적들을 살피는 데 부족함이 없다. 무한고독, 쓸쓸함마저 창작의 필연으로 여겼던 화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나에게는 1997년 화가의 꿈을 안고 번잡한 대학 근처를 벗어나 덕소 삼패동에 작업실을 마련해 보냈던 10년 세월을 떠올리게 하여 그 울림의 깊이와 폭이 남다르다. ‘오직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는 글을 대할 때면 한때 화가의 길을 걸었던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존경과 그리움, 부러움을 갖게 한다.

나는 요즘 덕소의 연구실에서 새벽녘 장욱진의 글을 읽는다. 글귀를 좇다 보면 12년 동안 덕소의 자연과 함께한 장욱진의 일상이 눈앞에 그려진다. 자연마저 숨죽인 새벽시간에 깨어 자연을 피부로 느끼며, 걷고, 생각하고, 그 생각 끝에 붓을 들었던 화가를 떠올린다. 그 순간 비워내고, 덜어내고, 정직한 생활을 유지한 삶의 태도가 그림 세계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평생 한 가지 업을 사랑한 사람, 심플하다는 말로 스스로 삶과 예술세계를 대변한 화가 장욱진. 그가 외쳤던 ‘심플하다’의 참뜻을 깨닫고, 실천하고 싶다.

오늘도 미술관에 걸린 그림을 마주하며 되뇐다. ‘심플하게 살자.’

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장욱진#강가의 아틀리에#화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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