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국의 北-美 대화 제의에 한국이 안 보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일 00시 00분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어제 북한 정권교체나 붕괴, 군사적 공격은 미국의 목표가 아니라며 “어느 시점에 북한과 테이블 앞에 앉아 북한이 추구하는 안보와 경제적 번영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백악관 대변인도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면 우리는 전진할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북한의 두 번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 이후 대북 강경론이 대두되는 와중에 나온 대화론이다.

이들의 발언은 군사적 타격부터 대화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정책을 재확인한 데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현지 시간)만 해도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며 북한 붕괴론·정권교체론에 미중 빅딜론 같은 백가쟁명식 해법이 난무했다. 군사적 옵션에 부담을 갖게 된 미 행정부가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메시지로 북한에 결단을 촉구했다면 주목할 일이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나 2007년 1차 북핵 실험의 경우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북-미는 대화를 통한 극적인 타결로 정면 대결을 피했다. 북한 ICBM 사거리가 미 동부까지 포함하게 된 위기 국면에서 트럼프 행정부도 막판 딜(거래)을 통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이미 비공식 채널을 통한 접촉에 나섰는지도 모른다. 6, 7일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미 간 전격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에도 북과 대화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는 더불어민주당은 반색할 일이 아니다. 미국이 ‘코리아 패싱’으로 한국을 건너뛴 채 북한과 직접 대화한다면 김정은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다. 북한은 평화협정을 논하면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 규모 축소,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이달 하순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까지 2, 3주 동안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 위기와 기회 사이를 오가며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다급한 게임판에 정작 한국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도 한미 정상 간 전화 통화가 미뤄진 데 대해 “의제도 없는데 무조건 통화하느냐”고 반문했다. 북-미 간 정면 대결이든, 극적 타협이든 그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된다. ‘한국 왕따’에 이어 ‘한국 독박’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한가하게 아웃사이더 행세를 할 때인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렉스 틸러슨#북미 대화#아세안지역안보포럼#코리아 패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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