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태훈]서민이 박수칠 司正(사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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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정치부 차장
이태훈 정치부 차장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수리온 헬기의 부실 운용 실태를 보면 ‘이게 정상적인 군대인지, 나라인지’ 분노가 치민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것은 방위사업청의 ‘선(先) 전력화, 후(後) 시험’ 방침이다. 반복되는 추락사고와 성능시험 미달 판정으로 헬기 양산이 중단된 상황에서 겨울철 결빙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는데도 전력화를 재개했다.

가정용 프라이팬 하나를 만들어도 실제 열 가열 시험을 하는데, 대당 200억 원짜리 첨단 군용 헬기의 재양산 여부를 판단하면서 실제 결빙환경 시험 한번 안 해본 것이다. 수리온에 빗물이 새고, 프로펠러가 기체를 때리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반복된 것도 군 당국의 이런 한심한 대처가 원인이다. 감사 결과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대목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점이다. 근무태만이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부실과 한심함의 정도가 너무 크다.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뿌리 뽑기 위해 가맹 분야 불공정관행 근절 대책을 18일 내놓았다. 여기에는 본사 오너가 중간에서 가맹점주로부터 통행세를 받지 못하도록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강도 높은 대책들이 포함돼 있다.

세상에 다양한 갑질이 존재하지만 프랜차이즈 본사 갑질은 막다른 길에 몰린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점에서 가장 비열하고 악질적인 범죄다. 중장년 퇴직자들은 가게를 창업하면 망하지 않기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어 목돈을 털어 넣어 장사에 나선다. 이렇게 가맹점주들은 처지가 절박하다 보니 본사에서 갖은 전횡을 일삼아도 울분을 삭이고 피해를 떠안게 된다. 그런 점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내놓은 이번 대책은 공정위의 막강한 칼을 서민을 위해 쓰는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 대책을 효과적으로 잘 시행하면 서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

정권 초기인 지금 검찰과 공정위의 움직임을 종합해 보면 문재인 정부 첫 사정(司正)의 초점은 ‘방산비리 척결’과 ‘서민 보호’ 등 2가지로 모아진다. 국가안보를 팔아먹는 방산비리 세력과, 힘없는 서민을 괴롭히는 나쁜 기업주들을 단죄한다는 점에서 국민 친화적 사정으로 볼 여지가 많다. 안보는 나라를 튼튼히 하는 것이고, 서민 보호는 나라의 기초를 든든하게 하는 일인 만큼 이번 사정의 방향은 일단 긍정적이다.

관건은 성과를 제대로 내는 일이다. 사정 드라이브 건다고 요란만 떨다가 깃털만 건드리는 용두사미 검찰 수사가 되거나, 서민 보호 흉내만 내다가 대기업 때려잡기에만 골몰하는 공정위 조사가 된다면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기가 어렵다.

방산비리는 적과 싸우는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안보를 좀먹는 만큼 무엇보다 비리의 전모를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그런 다음 죄의 경중에 따라 관련자를 처벌한 뒤 이 땅에 다시는 국가안보를 치부에 이용하는 부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확실한 개혁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향후 수사 과정에서 전(前) 정부 실세들이 연루돼 정치보복 논란이 일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전임 정부, 현 정부를 가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사하면 국민은 그 결과를 신뢰한다. 그 대신 이것저것 눈치를 보면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서민을 등치는 대기업 갑질을 근절하는 일은 정의로운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공정위의 존재 의의가 걸린 사안이다. 일회성 단속을 넘어 지속적인 감시가 이뤄지도록 공정위의 조직 역량을 대거 투입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이태훈 정치부 차장 donga@donga.com
#수리온 헬기 부실 실태#방산비리 척결#서민 보호#정치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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