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의 뉴스룸]‘체육관 전당대회’의 종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홍수영 정치부 기자
홍수영 정치부 기자
전국 주요 도시의 웬만한 규모가 있는 체육관이라면 안 가본 데가 없다.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은 기본이고 대구 실내체육관, 광주 염주체육관,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 경남 창원 실내체육관 등 양손으로도 못 꼽는다. 지방의 어떤 도시를 떠올리면 체육관만 생각나는 곳도 있을 정도다.

나는 스포츠부 기자가 아니다. 2008년부터 정당을 출입하며 온갖 ‘체육관 당 행사’를 취재한 탓이다. 당 대표나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가 열리면 사전에 권역별 합동연설회를 진행한다. 그때마다 전국의 체육관은 들썩거렸다.

체육관으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요란했다. 조금이라도 틈이 난 자리에는 온통 현수막이 내걸렸고, 단체티를 맞춰 입은 이들이 꽹과리를 치며 지지하는 후보를 연호했다. 체육관 안은 평일인데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각 후보 지지자들로 왁자지껄했다.

그러나 이제 보수 정당에서 ‘체육관 전당대회’의 풍경은 사라지려나 보다. 자유한국당은 3일 ‘포스트 박근혜 체제’를 이끌 새 지도부를 선출하며 처음으로 체육관이나 컨벤션센터가 아닌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전당대회를 열었다. 격정적인 웅변으로 세몰이를 하는 후보들의 정견 발표도 없었다.

그 대신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후보들은 한 농가에서 목에 수건을 두르고 호미로 감자를 캐고 있었다. 국민께 봉사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이에 앞서 6월 26일 바른정당도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지명대회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단출하게 치렀다.

사실 체육관 전당대회는 고비용 저효율 정치구조의 상징으로 꼽혀왔다. 정치권에서도 ‘당원들의 축제’라고 쓰고 ‘돈 정치’라고 읽었다. 통상 전당대회는 현장투표를 위해 수천 명의 당원과 대의원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이벤트로 진행된다. 행사장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전세버스가 즐비했다.

문제는 자발적 당원이 많지 않다 보니 행사가 열리기까지 모든 과정에 돈이 든다는 점이다. 현금을 깔아줘야 움직이는 함진아비라고나 할까. 한 재선 의원은 “새벽부터 당원들을 싣고 오기 위해 버스 대절비와 식비, 뒤풀이 비용까지 당협위원장이 내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 당협위원장은 경비를 어디서 마련했을까. 만약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면 그가 도운 후보는 그에게 그만큼의 빚을 진 셈이다.

그동안 당 대표 경선이 ‘쩐의 전쟁’으로 불린 이유다. 의석수가 170석을 넘던 ‘공룡 여당’ 시절 당 대표에 도전하려 한 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까 최소 30억∼40억 원은 써야겠더라. (19대) 총선을 마치면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는데 임기 1년 대표를 하려고 그 돈을 쓰는 게 맞나 싶어서 접었다”고 털어놨다. 201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당내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새 대표가 감자 창고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는 모습이 ‘정치적 쇼’로 비칠 수 있다. 보수 정당이 체육관 전당대회를 포기한 데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며 당원 동원력이 크게 떨어진 탓도 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허울뿐인 체육관 전당대회를 고집하는 것보다는 낫다. 모바일 투표를 도입했는데도 당원들의 최종 투표율이 25%대에 그치는 한국 정당의 현실에서 ‘당원들의 축제’는 아직 이상(理想)이다. 덩치만 크고 환경 변화에 둔한 공룡 같던 보수 정당은 더 과감하게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
#체육관 전당대회#자유한국당#당원들의 축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