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해외 ‘먹튀 자본’ 맞서 대기업 방어할 장치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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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그룹을 전방위로 공격하고 있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집한 데 이어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인 삼성SDI와 삼성화재 주식을 1%씩 확보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고 있으며 1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성사되더라도 앞으로 사사건건 경영에 간섭할 개연성이 높다. 이들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돼 있다며 주주 권익을 주장하지만 시세 차익을 통한 단기 이익이 주 목적으로 보인다.

글로벌 헤지펀드들의 한국 기업 공격은 삼성에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대주주 지분이 적고 기업 지배구조가 취약한 대기업들이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들은 한국 기업의 장기 성장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해외 ‘먹튀 자본’이 국내 기업과 벌이는 분쟁을 주주 간 다툼이 아닌 국익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물산의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삼성과 엘리엇 가운데 어느 쪽을 지지할지 주목된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되어 경영을 잘 못하면 기업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것은 자유시장 경제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야 기업 혁신이 이뤄지고 경제에 새로운 물이 흘러들어간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정부가 적대적 M&A 활성화를 통해 기업 건전성을 촉진하려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해외 투기 펀드들이 한국 기업들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장치는 ‘자사주 처분’이 거의 유일하다. 선진국들은 더 많은 경영권 방어 제도를 갖고 있다. 1주에 다수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M&A 공격이 들어오면 기존 주주가 신주를 싸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등이다. 미국의 구글과 포드,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차등의결권을 갖고 있어 경영권 걱정에서 벗어나 장기적 시각에서 회사를 운영한다. 한국도 경영권 보호 수준이 너무 낮지 않은지 법적 제도적 검토를 할 때가 됐다.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이 SK 주식을 매집해 경영권 개입을 노린 일이 벌어진 이후 국내에도 경영권 방어 제도의 필요성이 거론됐으나 무산됐다. 경영을 잘못해도 경영권을 보장해 줌으로써 재벌 세습에 이용될 것이라는 불신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경영권 방어 제도를 도입하려면 기업들이 국민과 시장을 안심시킬 만한 경영의 투명성을 보여줘야 한다.
#해외#먹튀 자본#대기업#방어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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