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병일]한국호, 이젠 방황 끝내고 블루오션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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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걸친 서구의 발전 궤적
반세기 만에 따라잡은 한국
목표가 사라지자 방황

또 한번의 도약과 생존 위해
다시 세계로 눈 돌려야

한국에서 희망 찾는 빈곤국
그들을 산업화 길로 이끄는
공동번영의 새 항해 시작하자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20세기 후반을 숨 가쁘게 달려 온 대한민국. 그 숨 가쁜 질주는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고 원조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 대한민국을 격상시켰다. 산업혁명, 근대국가 시민혁명, 국제기구 창설로 이어지는 두 세기에 걸친 서구 국가들의 발전 궤적을 반세기 만에 따라잡은 고속 질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많은 국가들이 아직도 절대빈곤 속에서 고통받고 있고, 빵의 문제를 해결하고 제대로 된 교육 기회, 의료 혜택 등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국가는 지극히 소수이며, 이들 중 선거를 통해 정부를 선택하는, 즉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를 하는 국가는 더더구나 드물며, 이 중 원조를 받던 국가가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전한 경우는 대한민국만이 거의 유일하다는 사실은 분명 값진 성취이다. 65년 전 오늘 새벽 북한이 남침해서 전쟁이 터졌을 때 그 어느 누가 이런 대한민국의 미래 궤적을 상상이나 해 보았을까.

한국인의 열망과 의지가 압축성취를 만들어 낸 배경에는 따라잡을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의 산업 강국이 되었고, 선거에 의해 다른 이념 지향 간의 피 흘리지 않는 정권교체를 만들어 냈고, 원조 공여국이 된 대한민국은 더이상 따라잡을 상대가 없어졌다. 대신, 자신과의 싸움이 남아있다. 압축성장의 그늘이라는.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던 압축성장의 도도한 물결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고용 없는 성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성장의 햇볕을 받는 쪽과 그러지 못하는 쪽의 빛과 그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성장의 햇살이 그늘을 없애주던 시대는 가고, 그늘 쪽에 있는 사람들을 햇볕 쪽으로 나오게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2011년 말, 대한민국은 무역 1조 달러를 처음으로 달성했지만, 국민적 흥분은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인력자원밖에 없는 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무역의 기념비적인 1조 달러 달성이라는 역사적 사건이었는데 말이다. 자부심은 있었지만, 감동은 없었다. 모두를 비추던 햇볕의 시대는 끝났기 때문이다.

한국을 여기까지 끌고 왔던 고속질주가 사라진 후, 한국은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은 여전하고, 세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14억 인구의 중국은 한국의 제조업을 위협하는 자리까지 바싹 추격해 왔고, ‘잃어버린 20년’에서 다시 돌아온 일본은 중국과의 대립구도 속에서 자신의 미래 행보를 가늠해 보고 있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은 한국이 점점 중국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한국이 자신의 영향권 아래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를 둘러싼 한국, 미국, 중국 간의 갈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정학적 구도의 풍랑은 한국을 휘감고 있고, 21세기 생존과 번영을 모색해야 하는 한국은 더이상 방황할 여유가 없다. 다시 세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에 유례없는 풍요 속에서도 아직 빈곤에 신음하고 있는 국가들. 그들을 향한 서구 사회의 원조 모델은 실패했다. 서구는 원조받는 국가들의 부패를 탓하고, 개도국은 선진국의 제국주의 원죄 탓을 하지만, 둘 사이엔 넘기 어려운 신뢰 격차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처지를 경험했던 한국에서 그들은 자신의 희망을 보고 싶어 한다. 이제 그들의 희망이 먼 미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주자. 그들과 같이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자.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제대로 된 빈곤 퇴치를 위해 한국이 가는 길은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그들과 같이 그물을 엮으면서 같이 물고기를 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자산과 더 큰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의 열망이 같이하고, 세계시장 경영으로 능력을 다진 대기업과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같이한다면, 빈곤 국가들의 산업화를 같이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빈곤 탈출의 새 역사가 한국과 같이하게 되는 세계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셈이다.

더이상 따라잡을 상대가 없어진 한국호, 이젠 그간의 방황을 끝낼 때다. 다시 눈을 세계로 돌려라. 블루오션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새로운 항해의 역사가 시작된다. 65년 전 오늘, 지금의 대한민국을 상상조차 못했듯이 그 항해는 더 눈부신 세계로 이어지리라.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호#방황#블루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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